반도체 경기가 '한파'를 겪으면서 생산 공정용 특수 가스를 제조하는 원익머트리얼즈의 불안감도 커졌다. 지난해 공급망 불안의 여파로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는 실적 위축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새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부임한 오동근 재무본부장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사내이사 합류를 눈앞에 둔 만큼 의사결정의 무게감도 한층 막중해졌다. 원익머트리얼즈는 2023년 경영 키워드로 '내실화'를 제시했다. 특수 가스 가격이 하락하는 시장 상황은 수익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비용 절감책 수립 등 돌파구를 찾을 전망이다.
오 본부장은 1969년 3월생으로 동의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오 본부장이 원익그룹과 연을 맺은 건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설사인 신원종합개발에 입사해 6년 동안 재경팀장을 역임했다. 2016년에 그룹 지배구조가 지주사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원익홀딩스 재무팀장으로 발령됐다. 같은 해 2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준비할 당시 기업실사를 책임지는 등 조달 실무를 이끌었다.
2019년에는 계열사인 나노윈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노윈은 2018년에 원익QnC가 240억원을 투입해 인수한 업체로, 반도체 생산 장비에 탑재되는 부품을 세정하는 기술력을 갖췄다. 원익QnC의 나노윈 합병이 순탄하게 이뤄지도록 뒷받침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원익홀딩스 CFO로 취임해 2년 동안 직무를 수행했다.
지금의 원익머트리얼즈 재무본부장으로 부임한 시점은 올해 1월이다. 지주사에서 재무를 총괄할 당시 미등기임원이었으나, 원익머트리얼즈에서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약할 전망이다. 이달 29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 오 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오 본부장의 과제는 회사가 설정한 경영 기조와 맞물린다. 한정욱 원익머트리얼즈 대표가 올해 1월에 발간된 그룹 사보에 게재한 '신년 메시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대표는 "2022년은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룩한 한 해였다"며 "2023년에는 최고의 경쟁력과 내실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고 강조했다.
원익머트리얼즈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실적을 거뒀다. 연결 기준 매출은 5813억원으로, 2021년(3107억원)과 견줘보면 87% 늘어난 금액이다. 영업이익 역시 888억원으로, 전년대비 75.8% 불어났다.
막대한 성과를 거둔 건 반도체 양산 공정에 쓰는 특수 가스 가격이 급등한 덕분이었다. 기존에는 △네온 △크립톤 △제논 등 3대 가스의 세계 생산량 70%를 우크라이나 기업들이 책임졌다. 하지만 2022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세계 특수가스 공급량이 빠르게 줄었고, 자연스레 판매가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올해 실적이 위축될 가능성에 선제 대응하는 취지에서 '비용 절감' 과제가 떠올랐고, 이는 '내실화' 슬로건의 연장선에 있다. 작년에 일궈낸 호실적이 올해도 이어질 지는 미지수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반도체 재고가 쌓이면서 업황이 나빠지는 대목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특수 가스 시세가 급격히 낮아진 대목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네온가스 가격이 방증한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월에 국내로 수입된 네온가스는 톤당 5만3700달러(7037만원)로 나타났다. 2022년 6월 당시 톤당 가격 290만달러(38억원)의 2%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오 본부장은 경영 내실화 추진과 별개로 반도체 업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면서 이탈하는 주주들을 붙잡을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올해 4월에 원익머트리얼즈가 주주들에게 지급할 배당 총액은 100억원이다. 주당 800원으로 책정했다. 배당 수준이 점진적으로 우상향할 지 눈여겨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