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인수·합병(M&A)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신성장동력 창출이란 결실을 가져온다. 반대로 인수 후 통합(PMI)이 잘 안돼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면 '아픈 손가락'이나 골칫덩이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테크3사(삼성전자와 LG전자, SK하이닉스) 역시 M&A를 통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테크 3사의 M&A 포트폴리오를 두고는 시장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들이 공들여 키우고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잘 뿌리내렸는지 점검해 본다.
SK그룹에 편입된 지 10년 만에 SK하이닉스는 역사적인 인수·합병(M&A)을 단행한다. 10조원 규모의 인텔의 낸드 사업부(솔리다임으로 사명 변경) 인수를 성사시킨 것이다. 높은 D램 매출의존도(매출 비중 약 70%)를 탈피하기 위한 전략적 M&A였다.
하지만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인 1년 사이 예상치 못한 불황이 닥쳤다. 분기 적자를 내자 일각에선 솔리다임 인수를 두고 '승자의 저주'라고 우려하는 반면, 이제 인수한 지 1년이 된 만큼 아직은 섣부른 평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솔리다임 M&A를 여러 각도에서 짚어본다.
◇문제는 타이밍? 분명한 시장점유율 상승 효과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 인수 딜은 2021년 말 70억달러를 주고 SSD 사업부와 다롄 팹(낸드 생산공장)을 넘겨받으면서 1차 마무리됐다. 나머지 낸드 웨이퍼 설계·생산 관련 지식재산권(IP)과 연구·개발(R&D), 운영인력 등 유·무형자산은 2025년 잔금 20억달러를 치르고 이전받아야 한다. 아직 딜이 완전히 클로징(잔금납입완료)된 게 아니다.
솔리다임 인수로 SK하이닉스는 낸드 시장경쟁력을 끌어올리게 됐다. 우선 내부적으로 봐도 지난해 4분기 매출 비중은 D램과 낸드가 각각 60%, 31%로 솔리다임 인수 전보다 낸드 비중이 올랐다. 그만큼 사업 안정성이 좋아졌다. 또 SK하이닉스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 분야 경쟁력도 강화했다.
또 SK하이닉스는 원래 점유율 10% 안팎의 세계 5위권 낸드플래시 업체였으나 솔리다임을 품으며 글로벌 낸드 시장점유율 2위(20%), 3위로 올라섰다. D램의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의 3사 독과점 체제가 확고하나 낸드는 다르다. 한국 기업 외에도 일본 키옥시아,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까지 경쟁사가 많다. 여기에 중국 양쯔메모리(YMTC)가 낸드 적층 기술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한국 기업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SK하이닉스가 빠르게 낸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M&A를 결정한 것은 전략적으로 의미가 컸다.
특히 반도체 M&A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 속 각국 정부가 자국 보호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절묘한 타이밍의 '빅딜'로 주목받을만 했다. 그리고 작년 상반기까지만해도 솔리다임은 전체 실적 상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곧 예상치 못한 상황이 전개됐다. 하반기부터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심화되며 반도체 수요가 급감했고, 공급과잉으로 업황이 급격하게 얼어붙은 것이다.
◇승자의 저주? 예상치 못한 변수
SK하이닉스는 최근 컨퍼런스콜에서 4분기 영업손실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솔리다임 실적 악화도 영향을 끼쳤다. 작년 4분기 발생한 영업외손실 중 1조5500억원 규모는 키옥시아와 솔리다임이 보유하고 있는 낸드의 무형자산 가치가 하락하면서 회계상 손실로 인식된 것이다. 연말에 자산가치재평가를 진행, 재고자산평가손실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SK가 솔리다임을 실사까지 했는데 잘 모르고 샀을 리는 없다"며 "고객사들이 과거 인텔한테 사갈 때처럼 단가를 안쳐준다고 하더라. SK는 (인수 후) 그대로 팔겠다는 전략이었는데 그게 안 되면서(손실 규모가 커지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투자증권 송명섭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을) 좋지 않은 시기에 인수한 건 사실"이라며 "과거보다 메모리 회사 수가 줄고 업황도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판단으로 키옥시아 지분 투자에 이어 솔리다임까지 인수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 언택트수요가 사라지고 금리 인상에 따른 수요 둔화로 버블이 꺼지면서 메모리 기업은 적자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다. 송 연구원은 이어 "다만 나중에 업황 좋아지고 낸드 가격이 올라가면 당연히 많은 물량을 생산하게 되니 그때가선 이익이 증가하고 이 덕에 돈을 많이 벌 가능성도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2025년에 2차 클로징을 완료해 IP 등 자산을 모두 인수하게 되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은 각각 낸드를 차지 트랩(Charge Trap), 플로팅 게이트(Floating Gate) 기술로 생산하고 있다. 양사의 기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혼합한다면 기술적 시너지 창출을 노려볼 수 있다.
SK하이닉스의 차지트랩은 플로팅 게이트보다 부피가 훨씬 작아서 면적 축소가 핵심인 3차원(3D) 낸드 구성에 유리하다. 솔리다임의 플로팅게이트는 한 셀 안에 여러 전자를 넣고 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한 개 셀에 3개 숫자를 넣는 트리플레벨셀(TLC), 4개 숫자 쿼드레벨셀(QLC) 등으로 진화한다.
지금은 인수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라 솔리다임은 자체기술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2025년 이후로는 기술을 서로 혼합할 수 있다. 서로의 기술적 장점을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낸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SK하이닉스가 그때 가서 솔리다임과 얼마나 기술적·사업적 시너지를 잘 내느냐에 달렸다. 제대로 된 승부는 2025년 이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상화 작업 진행 중 솔리다임이 휘청이자 그룹은 리더십부터 개편했다.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은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3년간 임기를 마친 뒤 맡아오다 지난해 퇴임했다. 이후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이 직접 의장직을 수행하고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솔리다임 대표이사 대행을 맡고 있다.
이 전 사장은 지난해부터 솔리다임의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비롯해 미국 공략에 집중하는 '인사이드 아메리카(Inside America)' 전략을 맡았다. 그러나 1년 동안 솔리다임 실적이 나빠지자 정상화 작업에 나서기 위해 의장을 교체한 것으로 해석된다.
또 솔리다임의 초대 롭 크록(Rob Crooke) 최고경영자(CEO)가 돌연 사임하면서 곽 사장 대행체제로 임시로 이끌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노 사장을 최고시너지책임자(CSO)로 파견해 이사회 사내이사로도 참여하고 있다. 주요 경영라인을 개편한 만큼 솔리다임이 회복 시점을 앞당기는 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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