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지주사격인 금호고속이 금호건설의 경영 리스크 요인으로 대두되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금호고속에 대한 금호건설의 자금 지원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언급 중이다. 최근 2~3년간 금호고속 경영 상황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는 탓이다.
금호건설은 금호그룹에서 유의미한 이익을 내는 유일한 계열사다. 국내 건설경기 호황으로 실탄을 많이 비축해뒀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당장 수익 역성장을 비롯해 우발채무 리스크 관리가 최대 과제다.
이런 와중에 금호고속이 자금난에 처하면 자금 지원 주체가 되는 게 불가피하다. 리스크가 잇따라 터질 경우 금호건설 홀로 감당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금호건설 관련 주요 이슈 중 첫 번째로 ‘계열지원 부담’을 꼽았다. 한기평은 전년도에 낸 종합보고서에서도 ‘계열관계의 부정적 영향’을 금호건설의 핵심 리스크로 꼽은 바 있다.
금호고속의 자체 현금창출력이 부실하고 재무부담이 과중한 상황이라 유사시 금호건설의 자금지원이 이뤄져야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금호고속에 대한 자금지원이 이뤄질 경우 부담을 나눌 수 있는 다른 계열사가 없다는 점에서 금호건설에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신평사들은 금호건설 관련 보고서를 낼 때마다 계열 지원 가능성을 매번 주요 리스크로 꼽아왔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보고서에선 사뭇 달라진 톤이 감지된다. 리스크의 현실화 가능성을 더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뉘앙스다.
한기평은 과거 “유사시 지원 주체가 될 가능성”이나 “계열관계의 부정적 영향이 잠재돼 있다” 정도의 코멘트를 내놨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는 “(금호고속에 대한) 지원부담이 높은 수준으로 판단된다”고 적시했다.
금호고속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건 불안한 경영 사정이 있다. 정기공시 의무가 없어 2021년까지의 연간 감사보고서만 살펴볼 수 있지만 당시 상황만 보더라도 이미 재무여력이 부쳐보이는 상태다.
금호고속은 지난 4년 동안 수백억원대 순손실을 냈다. 2020년 순손실만 1300억원이 넘었다. 매출은 과거 한때 4000억원을 넘기기도 했지만 2021년에는 300억원대에 불과하다. 업계 전반적인 상황과 회사 자체의 펀더멘털 등을 고려할 때 실적이 유의미한 수준으로 반등하기 어려운 상태다.
2021년 말 부채비율은 500%를 넘어섰다. 이 기간 차입금의존도가 40%다. 단기차입금 의존도는 30% 가량이다. 금융비용 감당능력을 나타내는 EBITDA/총금융비용은 0.3배다. 매년 발생하는 이자를 자체 현금창출력으로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자산의 상당수를 현금이 아닌 다른 형태로 비축하고 있어 단기 유동성 대응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1조4000억원 규모의 자산총계 대부분을 ‘지분법적용투자주식(7400억원)’과 ‘토지 및 건축구축물(6050억원)’로 보유 중이다. 토지·건물의 상당수는 장·단기 차입금 담보로 잡혀있어 쉽게 처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분법적용투자주식의 대부분은 금호건설 지분인데 이 역시 그룹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처분할 수 없는 자산이다.
2021년 말 기준 현금보유고는 9억원 수준이다. 단기금융상품 등을 다 합친 유동자산은 55억원 남짓이다. 대폭 확대한 배당 덕분에 지난해 말 기준으론 현금 사정이 더 나아졌을 수 있지만 최대 200억원을 넘지 않을 것이란 게 신평업계 분석이다. 각종 차입금 및 이자 상환이나 사업에 필요한 유동성 확보가 시급해 보이는 상황이다.
차입금을 상환하면서 현금화 가능한 자산을 늘리거나 금호건설 지분을 팔아야하는데 둘 다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또 다른 자회사인 금호익스프레스 역시 실적과 재무 측면에서 금호고속과 비슷한 상황이라 별도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당장 기댈 곳은 금호건설뿐이다. 지난해 3분기말 기준 별도기준 금호건설의 현금성자산은 2200억원 수준이다. 금호고속 지원 여력은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올해부터 건설경기 한파에 따른 부담이 크다는 점이다. 국내 건설업 불황과 부동산 PF 시장에서 촉발된 우발채무 리스크에 대한 재무버퍼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룹 지배구조상 금호고속의 위기를 방치할 수는 없다. 박삼구 전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금호고속을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박 전 회장과 박세창 사장이 합쳐 금고속 지분 65% 가량을 갖고 있다. 금호고속은 금호건설과 금호익스프레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금호고속은 1940년대부터 국내 고속버스 운송업을 영위해왔다. 광주 및 호남지역에서 시작해 전국 단위로 사업을 넓혀 국내 운송업계 선두 지위를 다졌다. 여객운송사업부터 전세버스사업, 화물운송사업, 부품사업 등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고속버스 기반 운송 사업이 대부분인 구조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