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사들은 2021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선박 발주의 슈퍼사이클을 통해 막대한 수주잔고를 쌓았다. 이 선박들의 건조가 시작될 시점이 왔다. 조선사는 자체 자금으로 배를 짓는 만큼 유동성이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조선사들이 잔고를 실적으로 전환하기에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더벨이 점검한다.
조선업계에서 현대미포조선은 ‘사이클의 첨병’으로 불린다. 업황 개선기에는 이익 증가세가, 업황 침체기에는 이익 감소세가 조선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나타난다. 이는 중형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사인 만큼 대형 3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보다 선박 건조기간이 짧다는 사업적 특성 때문이다.
현대미포조선은 3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업계에서는 현대미포조선이 당분간 이익 증가세를 유지해나갈 것으로 내다본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풍부한 수주잔고를 확보해 뒀으며 선박 건조에 투입할 유동성이나 차입 여력도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다.
현대미포조선은 2022년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 141억원을 거뒀다. 직전 분기의 영업손실 66억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4분기 770억원의 적자를 낸 이후 3개 분기만에 다시 흑자를 거둔 것이기도 하다.
흑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매출이 고정비용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현대미포조선은 올해 들어 1~3분기 누적 매출이 2조693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32.9% 증가한 수치이며 최근 5년을 기준으로 2017년(2조4534억원)과 2018년(2조4030억원)의 한 해 매출보다도 많다.
최근 5년 동안 현대미포조선의 수주 추이를 살펴보면 2021년을 기점으로 잔고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해 시작된 선박 발주 슈퍼사이클에 힘입은 것이다. 현대미포조선은 선박 건조기간이 짧은 중형조선사의 특성상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작업량 증대가 빠르게 나타난다. 이 점이 큰 폭의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사의 작업량 증대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선박 건조자금의 투입을 수반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외부 차입을 통해서라도 유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으며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다면 물량을 소화하는 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현대미포조선은 유동성 관리에 강점을 보이는 조선사다. 때문에 조선업계나 증권업계에서는 현대미포조선이 확대된 매출 규모를 꾸준하게 유지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최근 5년 동안 현대미포조선은 2019년을 제외하면 현금 보유량(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의 합계)을 꾸준히 5000억원 이상으로 유지해오고 있다. 보유 현금이 총차입금을 웃도는 순현금 상태도 유지 중이다. 현대미포조선은 상장 4개 조선사(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중 유일한 순현금 조선사다.
현대미포조선의 유동성 관리 전략은 현금의 절대량을 유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자부담을 억제하고 차입 여력을 확보하는 측면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미포조선은 2017년 영업이익 1079억원에서 2021년 영업손실 2173억원까지 이익의 추세적 감소세를 보이면서도 차입금을 꾸준히 줄여왔다. 이에 힘입어 현대미포조선의 순현금 규모는 최근 5년 중 지금이 가장 크다. 배기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차입금을 상회하는 현대미포조선의 현금 보유고는 유동성 위기감이 고조되는 시장에서 강점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현대미포조선 측은 눈앞의 재무 상황에 대해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직 선박 건조에 투입하는 현금을 이익 창출분으로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올해 들어 건조물량을 늘리고 있지만 3분기 들어서야 이익을 내는 단계에 진입했을 뿐이다. 이익 창출능력이 완전히 안정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재무구조를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미포조선 관계자는 “최근의 현금 증가분은 수주가 늘어난 데 따른 선수금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며 “향후 선박 건조자금으로 투입돼야 하는 부분인 만큼 당장의 재무구조를 여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건조량 확대에 따른 매출 증가가 이익의 꾸준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재무구조도 개선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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