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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 View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박기수 기자  2022-11-15 08:10:46

편집자주

시장 전체를 '숲'으로 본다면, 시장 속 플레이어들인 개별 기업들은 '나무'입니다. THE CFO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봅니다. Market View는 기사 형식에서 담아내기 부족했던 시장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보다 생생하게 담는 콘텐트입니다. 금리·환율·제도 등 매크로한 이슈를 비롯해 개별 기업의 재무, M&A, 주가, 지배구조 개편 등 다양한 이슈를 업계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THE CFO가 전달합니다.

Topic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Summary

흥국생명보험이 2022년 11월 1일 2017년 발행했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을 위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시장에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9일 5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을 금리 4.475%에 발행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이지만 발행사들은 5년 후 상환을 위한 콜옵션 조건을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2009년 우리은행의 콜옵션 미행사 사례 1건을 제외하면 모든 발행사들이 발행 후 5년이 지난 후 콜옵션을 행사해왔습니다. 투자자들도 콜옵션 행사를 전제로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면서 일종의 '관행'이 깨졌습니다.

흥국생명이 처음부터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THE CFO 취재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RBC비율 관련 법적 이슈를 무릅쓰고라도 콜옵션 행사를 위한 차환 발행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10월 실제 수요 조사 과정에서 두 자릿수 금리를 제시했음에도 후순위채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고, 발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이 발동되지 않으면 금리 스텝업 조항이 발동됩니다. 스텝업 금리는 약 6.7%였습니다. 만약 콜옵션을 행사하기 위해 차환 발행에 나섰다면 흥국생명은 9~10%대 금리를 감수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은 처음에는 흥국생명을 두둔했습니다. 11월 2일 금융위원회 보험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 금융감독원 보험감독국은 흥국생명 조기상환권 미행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흥국생명은 조기상황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흥국생명은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 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기존 채권에 부여된 권리 행사에 따른 금리조건 등 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다. 즉 흥국생명의 채무불이행은 문제 되지 않는 상황이고,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이다.


그러나 콜옵션 미행사가 몰고 온 파장이 작지 않았습니다. 11월 1일 콜옵션 미행사가 공식화하면서 채권가격이 급락했고, 그간 긍정적으로 유지돼왔던 한국물(Korean Paper)에 대한 인식이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로 신뢰가 깨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결국 흥국생명은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과 보험사 대출, 모그룹 자구책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고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결정을 번복한 셈이죠. RP는 4대 시중은행이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Market View

금융권 관계자 A

상환한다고 했다가 안 한 것이 가장 큰 문제

시장의 신뢰는 조그마한 곳에서 깨집니다.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을 거면 왜 9월에 상환 계획을 발표했을까요? 이 판단이 가장 아쉽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신종이면 5년 후에 들어오는 돈'이라는 관행이 있었다는 점을 차치하고 이 건은 흥국이 직접 갚겠다고 발표까지 했던 건입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콜옵션을 행사하겠거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걸 계획하고 자금 수급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겹쳤었던 레고랜드 사태와 맞물리면서 시장 분위기에 악영향을 줬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이 상환이 안되는데 이어서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미행사 사례까지 나오니,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서 한국의 채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될 명분을 준 것이죠.

다행히 까다롭고 냉정하기로 소문 난 글로벌 크레딧 3사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펀더멘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레고랜드 사태나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건에 관해 크레딧 3사의 뚜렷한 의견은 없는 듯 합니다.

크레딧 애널리스트 A

흥국생명 CFO는 최악을 면했다

시장이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이슈가 발생하면 개별 기업이 아니라 시장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부와 흥국생명 모두 입장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채권 시장은 한 번 이런 신뢰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들의 뇌리에 오래 박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같은 생각이나 '시간 지나서 또 발행하면 그때는 수요가 있겠지' 같은 것이 잘 안통하는 듯 합니다. 특히나 흥국생명은 외화채권 발행 경험이 적고 국내 보험사들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콜옵션 미행사는 흥국생명 CFO에게 일각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차환보다 스텝업금리를 택하는 것이 조달 비용이 훨씬 저렴했으니깐요.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번에 번복한 것이 그나마 나아보입니다. 만약 이렇게 한 번 투자자들을 저버린 흥국생명이 추후에 신종자본증권을 또 발행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그때 수요가 있을까요? 이미 신뢰를 어느 정도 잃었다고는 하지만 최악은 면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 A

신종자본증권, 규정 상으로는 자본 맞지만…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 번 떠올랐습니다. 금융당국이 제정한 규정 상으로는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 입장에서는 신종자본증권의 내용을 분석해 이 중 일부분만 자본으로 인식합니다. 일부를 부채로 본다는 의미인데 이를 토대로 보험사의 경우 조정 RBC비율을 산출하는 등 나름의 조정 재무지표를 기반으로 한 크레딧을 산정합니다.

물론 그간 5년 후 콜옵션 행사라는 관행이 있어왔지만 이번 흥국생명 사건 이후에는 투자자들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경각심을 조금 더 가지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 신평사에서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크레딧을 보험금 지급능력 평가 대비 두 노치 낮게 줍니다. (흥국생명 보험금지급능력평가: AA, 신종자본증권: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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