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융권 관계자 A
시장의 신뢰는 조그마한 곳에서 깨집니다. 콜옵션 행사를 하지 않을 거면 왜 9월에 상환 계획을 발표했을까요? 이 판단이 가장 아쉽습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도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나름의 논리가 있습니다. '신종이면 5년 후에 들어오는 돈'이라는 관행이 있었다는 점을 차치하고 이 건은 흥국이 직접 갚겠다고 발표까지 했던 건입니다.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콜옵션을 행사하겠거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걸 계획하고 자금 수급 계획을 세웠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겹쳤었던 레고랜드 사태와 맞물리면서 시장 분위기에 악영향을 줬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이 상환이 안되는데 이어서 신종자본증권의 콜옵션 미행사 사례까지 나오니,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서 한국의 채권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될 명분을 준 것이죠.
다행히 까다롭고 냉정하기로 소문 난 글로벌 크레딧 3사는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펀더멘탈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레고랜드 사태나 흥국생명 콜옵션 미행사 건에 관해 크레딧 3사의 뚜렷한 의견은 없는 듯 합니다.
크레딧 애널리스트 A
시장이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이슈가 발생하면 개별 기업이 아니라 시장의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부와 흥국생명 모두 입장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채권 시장은 한 번 이런 신뢰 문제가 생기면 투자자들의 뇌리에 오래 박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같은 생각이나 '시간 지나서 또 발행하면 그때는 수요가 있겠지' 같은 것이 잘 안통하는 듯 합니다. 특히나 흥국생명은 외화채권 발행 경험이 적고 국내 보험사들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콜옵션 미행사는 흥국생명 CFO에게 일각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차환보다 스텝업금리를 택하는 것이 조달 비용이 훨씬 저렴했으니깐요.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이번에 번복한 것이 그나마 나아보입니다. 만약 이렇게 한 번 투자자들을 저버린 흥국생명이 추후에 신종자본증권을 또 발행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그때 수요가 있을까요? 이미 신뢰를 어느 정도 잃었다고는 하지만 최악은 면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 A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가 다시 한 번 떠올랐습니다. 금융당국이 제정한 규정 상으로는 신종자본증권을 자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나 신용평가사 입장에서는 신종자본증권의 내용을 분석해 이 중 일부분만 자본으로 인식합니다. 일부를 부채로 본다는 의미인데 이를 토대로 보험사의 경우 조정 RBC비율을 산출하는 등 나름의 조정 재무지표를 기반으로 한 크레딧을 산정합니다.
물론 그간 5년 후 콜옵션 행사라는 관행이 있어왔지만 이번 흥국생명 사건 이후에는 투자자들이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경각심을 조금 더 가지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 신평사에서는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크레딧을 보험금 지급능력 평가 대비 두 노치 낮게 줍니다. (흥국생명 보험금지급능력평가: AA, 신종자본증권: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