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지분 취득 과정에서 주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총 2조원의 한화 자금이 대우조선해양에 투입되는데 이중 1조원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는다. 그 다음 자금 투입이 많이 이뤄지는 곳은 한화시스템(5000억원)이다.
한화시스템은 상반기 말 별도 현금성자산이 1조원이 넘는 '현금 부자' 회사다. 반면 가장 많은 돈을 태워야 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상황은 다르다. 상반기 말 기준 별도 현금성자산이 1541억원에 불과하다.
물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다음 달 1일 자회사 한화디펜스를 합병하면서 막대한 현금을 쥔다. K9 자주포 등 지상방산에 특화된 방산 계열사인 한화디펜스는 이전부터 견조한 실적을 올리며 현금을 차곡차곡 곳간에 쌓아가던 회사다. 작년 말 기준 현금성자산으로 3537억원을 보유 중이다.
만약 한화그룹이 최종 지분 인수자로 결정될 경우 지분의 취득 시점은 내년 3월 말이다. 이때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영업을 통해 자체 현금을 더 모을 여지는 있겠으나 유상증자 대금인 1조원까지는 금액이 빈다.
재원 마련 방법은 다양하다. 문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대응 방식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주처로부터 받는 선수금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유상증자 1조원 중 선수금의 대략적인 금액이나 비중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상반기 말 별도 기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보유한 별도 선수금은 5341억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흡수할 한화디펜스의 선수금도 작년 말 기준 8586억원이다. 한화디펜스의 보유 현금과 선수금을 비롯해 올해 말 들어올 선수금까지 합하면 당장의 유상증자 대금은 충분히 마련된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지분 취득을 위해 이 선수금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선수금은 만들어주기로 한 제품이나 상품을 완성하기 전에 거래처로부터 받는 일부 대가다. 계약 과정에서 제품 제조를 위한 원가 등을 고려해 선수금의 액수도 결정된다. 즉 선수금의 원칙적인 용도는 주문받은 물건을 만들기 위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부족한 유상증자 대금을 선수금으로 메꾼다는 말은 미래 발생할 현금흐름을 앞당겨 사용하겠다는 말과 같다. 이 경우 추후 계약한 물건을 만들 때 막상 현금이 부족할 가능성도 있다.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키우는 재무 전략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유상증자로 납입된 자본성 현금이 아니라 상거래로 인해 발생한 부채성 현금인 선수금은 근본적인 용도가 있는 자금으로 봐야 한다"라면서 "2000년대 중후반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당시 국내 조선·철강 업계가 위기를 맞았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되새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수금 활용 등으로 벌어질 수 있는 리스크를 모두 대응할 수 있을 만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금창출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작년까지 매년 적자를 보다가 올해부터 영업이익을 조금씩 내고 있다. 한화디펜스를 합병할 경우 현금창출력 지표가 개선되기는 하겠으나 운영자금이나 추후 투자 등을 고려하면 재무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선수금을 제외한 재원 마련의 '정도'로는 차입이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부족한 자금의 경우 시장과의 교류를 통해 차입을 진행하는 등 방법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