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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타워, 과거와 미래

컨트롤타워 없는 현대차그룹, '기획조정실' 역할은

④과거 부회장단이 비슷한 역할...변화하는 기획조정실, 정의선의 미래모빌리티 구현

조은아 기자  2022-09-30 16:52:58

편집자주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로 대표되는 컨트롤타워 조직은 그간 적폐 취급을 받아왔다. 과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수많은 부작용을 낳아왔던 탓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 그룹의 미래를 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벨이 주요 그룹 컨트롤타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본다.
현대차그룹엔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나 SK그룹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 같은 공식적인 '컨트롤타워'는 없다. 지주사 혹은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곳도 없다. 정몽구 명예회장 시절부터 회장이 그룹 경영을 직접 챙겼던 만큼 이를 보좌하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열린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아예 관련 조직이 없는 건 아니다. 그룹 차원의 결정을 내릴 땐 현대차 기획조정실(기조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다른 그룹의 컨트롤타워와 비교하면 역할과 위상이 크진 않지만 현대차그룹 내부에선 여전히 핵심 조직으로 통한다.

몇 년 사이 기조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우선 권위적 느낌을 물씬 풍기던 기조실이라는 이름부터 점차 사라지고 있다. 새 이름을 보면 지향점도 보인다.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강조하는 모양새다.

◇막강한 컨트롤타워 조직, 왜 없을까

오랜 기간 재계 2위를 지켰던 현대차그룹에 막강한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그룹 자체가 자동차 전문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계열사들의 판이 짜이다 보니 굳이 그룹 차원에서 추진할 큰 사업이나 계열사 간 조율이 필요한 사업이 거의 없었다. 현대차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했고 나머지 계열사들은 보조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이 직접 그룹의 대소사를 챙겼던 만큼 총수 역할을 대신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 역시 낮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 명예회장에 이어 정의선 회장도 대부분 사업을 직접 챙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정 명예회장 시절 컨트롤타워의 자리를 대신했던 조직을 찾자면 현대차그룹 부회장단을 꼽을 수 있다. 부회장이 한두 명에 그치는 다른 그룹과 달리 현대차그룹의 부회장은 한때 10명도 넘었다.

이들은 각 사업부를 총괄하며 정 명예회장을 보좌하는 핵심 인력으로 분류됐다. 각 분야 최고 책임자로서 회사 내 굵직한 현안과 경영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당연히 정 명예회장의 신임 역시 두터웠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각 부회장의 그룹 내 위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회장단에 대해선 두 가지 시선이 공존한다. '가신그룹'이라는 다소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도 따라붙지만 각 분야 최고 수준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평가가 더 컸다. 부회장단 가운데 정 명예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특히 더 많은 신임을 받은 인물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그룹처럼 해당 인물이 딱히 그룹의 2인자로 통하지는 않았다.



◇'기조실' 미래사업 포트폴리오 역할 초점

정의선 회장 체제로 접어든 뒤 부회장단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현재 부회장은 오너 일가인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밖에 없다. 기획조정실도 축소되며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고 있다.

기조실이 처음 만들어진 건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기아를 인수한 뒤 통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인사와 재무뿐만 아니라 구매와 연구개발 등이 기조실의 역할이었다. 생산과 판매 등을 제외한 경영지원 관련 모든 업무를 맡는 핵심 조직이었다.

기존에는 김용환 부회장이 기획조정1~3실을 아우르는 기획전략부문을 총괄했고 기획조정1~3실을 이끄는 실장들은 모두 부사장이었다. 그러나 김 부회장이 물러난 뒤 기존 1실장이었던 김걸 사장이 기획조정1~3실을 아우르는 기획조정실장으로 선임됐다. 김 사장은 2018년 말부터 지금까지 기획조정실장을 맡고 있다. 당시 전체 수장이 부회장에서 사장으로 바뀌고 기조1~3실장 가운데 1실장은 전무급으로 낮아졌다.

현대차그룹은 기조실의 구체적 업무 분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대략적으로 1실이 현대차와 기아 등 핵심 계열사를 담당하고, 2실이 나머지 계열사를, 3실이 그룹 전반의 재무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눈에 띄는 건 정 부회장 체제 이후 조직 개편이 잦았다는 점이다. 기존 기획조정실은 그대로 두되 아래 있던 기획조정1~3실의 이름이 모두 바뀌었다. 2021년 기조1실은 사업기획1실로, 기조2실은 사업기획 2실로, 그리고 기조3실은 사업전략실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 추가 조직 개편이 있었다. 사업기획1실은 미래성장기획실로 재편돼 그룹 전체의 미래 사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순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인력 이동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기획2실은 사업기획실로 바뀌었고 사업전략실은 지속경영기획실로 바뀌었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룹 전반의 투자 등을 기획하고 조정하는 업무보다는 미래 신사업 발굴 역할이 한층 강화된 점도 눈에 띈다. 현재 임원의 주요 보직 가운데 '기획조정'이 들어간 인물은 김걸 사장 뿐이다.

김걸 사장 아래 3개 실의 수장은 모두 부사장이다. 미래성장기획실장은 김흥수 부사장, 사업기획실장은 전상태 부사장, 지속경영기획실장은 한용빈 부사장이 맡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기조실은 그룹의 미래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경영철학을 뒷받침하는 미래 전략이나 주요 M&A 등을 지원한다. 정 회장은 향후 그룹의 사업 비중이 자동차 50%, AAM 30%, 로보틱스 20%가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이를 위해 기조실은 최근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앱티브와의 합작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로봇 관련 사업은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자율주행은 앱티브와 합작해서 만든 모셔널을 통해 자동차 기업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자동차 제조 영역을 넘어 고객의 시간을 더 가치있게 만들기 위해 지능형 모빌리티 제품(Smart Mobility Device)과 지능형 모빌리티 서비스(Smart Mobility Service) 등 2대 사업 구조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획조정실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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