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주요 그룹들이 그렇듯 SK그룹 역시 과거 오너의 '황제경영'을 돕는 최정예 조직이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규모는 줄이고 권한은 덜어내면서 현재의 SK수펙스추구협의회로 최종 진화했다.
SK그룹이 밝히고 있는 협의회의 정의는 명확하다. 주요 계열사들이 체결한 '협약'에 기반한 최고 '협의' 기구다. 더 구체적인 역할을 살펴보면 계열사 지원과 자문 제공이다. 이른바 지원하되 군림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최종 결정은 당사자인 계열사가 한다.
◇삼성 비서실 이긴 최정예 부대, SK 경영기획실
SK그룹에 수펙스(Super Excellent Level)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된 건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최종현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끌던 시기다. 초창기 협의회는 단순 사장단 회의였다. 이후 토론과 독서를 통해 공부하는 모임으로 바뀌었다가 최근 몇 년 사이 계열사의 자율경영을 지원하고 자문을 제공하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그룹의 중대 현안은 협의회에서 논의하고 이를 토대로 각 계열사에 자문하면 계열사 이사회가 결정하는 방식이다.
협의회 이전엔 구조조정본부라는 컨트롤타워가 존재했다. 기존 경영기획실이 이름을 바꾼 곳이다. SK그룹의 경영기획실은 1980년 유공 인수 당시 경쟁자였던 삼성그룹 비서실을 꺾은 곳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수전에서 정보력과 치밀한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다. 당시 '골리앗을 꺾은 다윗'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만큼 그룹의 핵심 인력이 모인 곳으로 중요한 시기마다 SK그룹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맞아 1998년 4월 구조조정추진본부(구조본)로 이름은 바뀌었으나 최고 엘리트가 모인 최정예 조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구조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계열사 정리와 재무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었다. 황제경영의 산실이라는 비판이 불거지자 점차 조직 규모가 축소되다가 2003년 결국 해산 수순을 밟았다.
당시 SK그룹은 각 계열사의 전문경영인 및 이사회를 통한 투명한 의사결정 체제를 확립하겠다는 취지로 구조본 해산을 결정했다. 최태원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SK그룹이 크게 흔들리던 상황에서 최후의 카드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주요 경영진이 모여 해단식까지 따로 열었다는 점에서 당시 SK그룹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이후에도 협의회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구조본의 권한은 대부분 SK㈜로 넘어갔다. 2004년 손길승 회장이 구속되자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진 5명으로 구성된 'SK 경영협의회'가 구성되기도 했다. 협의회가 컨트롤타워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여전한 엘리트 조직, 권한과 규모는 대폭 축소
그러나 2013년 협의회가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서게 된다. SK㈜가 과거 구조본처럼 회장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불거지면서 지주사 역할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SK㈜가 보유했던 일부 기능이 각사 이사회 및 협의회에 전부 넘어갔다. 당시 최 회장은 "앞으로 자기 회사 일을 지주회사에 물어보지도 가져오지도 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지금의 체제가 만들어졌다. 주요 현안을 협의회를 통해 논의하지만 최종 결정은 각 계열사 이사회에서 직접 내리는 방식이다.
협의회는 지금까지도 매달 모이는데 이 자리에 최 회장은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논의를 거치며 논의된 내용을 조 의장이 최 회장에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SK㈜, SK이노베이션, SK스퀘어, SK E&S, SK하이닉스, SK텔레콤, SKC 등 20개 계열사가 협의회 소속이다. 참여 계열사 역시 내부 논의를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는 물론 규모가 조금 작아도 신성장동력이 될 만한 사업을 하고 있는 계열사가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임직원은 모두 더해 100명대 초반대로 전해진다. 다만 조직특성상 겸직이 많아 협의회 활동만 하고 있는 인원은 이보다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SK그룹의 덩치가 지금보다 훨씬 작던 1998년 구조본 출범 당시 인원이 90명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직 규모가 눈에 띄게 작아졌다.
내부에 전략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 환경사업위원회, ICT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소셜밸류위원회 등 모두 7개 위원회가 있고 각 계열사는 이 가운데 몇 개 위원회를 선택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핵심은 조 의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략위원회다. 그룹 차원의 전략을 수립하고 투자를 검토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 등이 논의되는 곳도 전략위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