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의 채권시장내 가치가 디스카운트되고 있다. BIR(채권내재등급)이 실제 신용등급을 한참 밑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실적부진으로 재무건전성에 금이 가자 신용등급이 강등된 것은 물론 회사채 몸값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지난해 흑자전환했다가 올 1분기 다시 적자를 봤기 때문이다. 재무지표도 AA- 등급 하향트리거를 건드린 것으로 파악된다.
김준환 호텔신라 TR부문 지원팀장(CFO)의 어깨가 무거울 것으로 보인다. CFO를 평가하는 주요지표로 재무건전성과 신용등급, 조달금리가 꼽히는 만큼 부담감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재무지표 저하, BIR도 하락세 '계속'
13일 채권평가업계에 따르면 호텔신라 BIR이 실제 신용등급보다 1~2노치가량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BIR은 유통수익률이나 스프레드를 기준으로 책정된다. 시장 분위기와 투자수요가 반영되는 만큼 통상적으로 신용등급 조정의 선행 지표로도 인식된다. BIR과 실제 등급 간 차이가 클수록 실제 신용등급도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다.
호텔신라의 현재 유효 신용등급은 ‘AA-/안정적’이다. 2020년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신용평가3사가 등급을 강등한 이래 약 2년 동안 AA급 끝선에서 버티고 있다.
반면 BIR은 A급에 수렴했다. 호텔신라의 채권가치가 유통시장에서 A+나 A0 회사채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는 의미다. 나이스P&I와 KIS자산평가는 12일 기준으로 호텔신라의 BIR이 A+라고 평가했다. 한국자산평가는 이보다 낮은 A0를 매겼다. 그나마 지난해 말보다 채권가치가 좋아진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KIS자산평가와 한국자산평가 모두 호텔신라의 BIR이 A0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채권가치 저평가는 개별민평금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자산평가에 따르면 12일 기준으로 호텔신라의 3년물 개별민평금리는 3.918%다. AA- 등급민평금리보다 26bp나 높다. 호텔신라의 개별민평은 A+ 등급민평과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호텔신라의 BIR은 실적이나 재무건전성과 궤를 같이 한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호텔신라의 채권가치는 AA+나 AAA로 평가받았다. 당시 호텔신라가 사상 처음으로 매출 5조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영업이익도 2959억원에 이르는 등 최대실적을 낸 덕분이다.
2018년 말 대비 재무지표가 나빠지긴 했지만 투자자들이 호텔신라를 냉대하지 않았다. 재무지표가 저하된 것도 신규 리스회계기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호텔신라가 신규투자 속도를 적절히 조절한다면 재무건전성을 관리할 것이라는 투자자의 믿음이 의구심보다 더 컸다.
이런 분위기에 금이 간 것은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덮치면서다. 호텔신라가 공격적으로 신규투자를 진행하던 찰나 코로나19로 국내외 여행객의 발이 묶이자 영업실적이 악화, 재무건전성마저 훼손됐다. 호텔신라는 2020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연결기준 순손실 규모가 2833억원에 이르렀다.
총차입금이나 부채총계가 2019년 대비 크게 늘진 않았지만 자본이 줄어들면서 부채비율이 치솟았다. 수년 동안 200%대를 유지하던 연결기준 부채비율이 2020년 말 360%를 돌파했다. 동시에 실제 신용등급이 한 노치 강등됐고 BIR도 순식간에 2~3노치 떨어졌다.
◇'재무통' 김준환, 수익성· 방어 총력…"낙관은 일러"
김 상무가 2019년 선임된 이래 호텔신라의 재무건전성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김 상무는 1970년생으로 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를 거쳐 일리노이대 MBA를 졸업했다. 200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영관리와 재무분야 업무를 주로 맡았다. 2014년 호텔신라에 전입한 후 1년 만에 주력사업인 면세사업부문 지원팀 재무그룹장에 올랐다. 2019년 정기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CFO의 핵심성과지표(KPI)는 신용등급과 조달금리”라며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개별민평금리가 상승해 BIR 저하가 이어진다면 CFO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텔신라는 올 1분기 재무지표가 신용평가사의 AA- 등급 하향 트리거에 근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흑자전환했다가 올 1분기 다시 적자를 내면서다. 부채비율은 379%로 지난해 말 보다 19%P 높아졌고 부채총계도 2조1469억원을 기록해 늘어났다. 호텔신라의 채권가치가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한국기업평가는 “호텔신라가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임차료 감면, 비용절감 등 노력을 기울여 수익성을 다소 회복했다”면서도 “재무부담은 여전히 과중한 수준으로 차입금의존도나 부채비율 등 재무안정성 지표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호텔신라는 김 상무에 대한 신뢰를 이어가고 있다. 호텔신라가 지난해 흑자전환한 것에 좀더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김 상무는 2019년 임원 승진과 함께 호텔신라 사내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도 김 상무는 사내이사로 다시 재선임됐다. 임기는 2025년 3월 정기주주총회까지다.
호텔신라 측은 김 상무의 사내이사 재선임 배경을 놓고 “TR부문 재무그룹장, 지원팀장과 CFO를 겸임하면서 경영관리와 재무전문성이 높다”며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호텔신라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 기업가치 향성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부응하듯 김 상무는 최근 공모채 발행을 주도해 수요예측에서 오버부킹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초 호텔신라의 공모채 모집금액은 2500억원이었지만 수요예측에서 모두 9000억원의 투자주문을 확보, 최종 3500억원으로 증액발행했다. 다만 모든 트랜치에서 조달금리가 등급민평금리보다 높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