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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팽창 장기CP 시장 긴급점검

금리 출렁대자...'까다로운 절차' 회사채를 밀어내다

①1~4월 전년대비 134% 폭증, 기업들 발행 용이한 사모방식 선택

이상원 기자  2022-05-12 16:12:56

편집자주

장기CP 시장이 뜨겁다. 금리 불확실성으로 투자자들이 만기가 긴 회사채를 외면하자 발행사들은 조달이 상대적으로 쉬운 장기CP로 눈을 돌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시장 팽창으로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도 나온다. 장기 CP의 경제적 실질은 공모 회사채와 동일하지만 사모형태로 발행되면서 비롯되는 문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더벨이 장기CP 시장을 긴급 점검해본다.
장기 기업어음(CP)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채권 투심이 위축되자 조달 과정이 편리한 장기CP를 찾는 기업이 늘어난 결과다.

갑자기 시장이 커지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CP는 전형적인 사모상품으로 주로 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해당 기업이 얼마나 많은 규모로, 또 어떤 조건으로 발행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베일에 싸여 있어 위기시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상시 모니터링을 비롯,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넉달만에 작년 절반…공모채 시장 '구축효과' 우려

국내 장기CP 시장 규모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지난 1~4월 장기CP 발행 규모는 총 7조7500억원으로 3조3050억원을 기록한 전년 동기 대비 134.4%의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전체 발행 규모가 약 15조원으로 4개월만에 약 절반 수준에 도달한 셈이다.

새롭게 데뷔하는 이슈어(Issuer)들도 여전사를 중심으로 많이 나타났다. 이후 발행량을 늘려가며 현재 대부분 여전사들의 장기CP 잔량은 1조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일반 기업까지 발행에 나서며 발행 규모를 키우고 있다.

장기CP 증가는 우선 기준 금리 인상과 맞닿아 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채권평가손익이 악화되면서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었다.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속출하고 금리가 높게 결정되며 회사채 조달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반해 CP는 2009년 자본시장법 시행과 함께 만기 1년 제한이 사라졌다. 대신 만기 1년 이상인 장기CP의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발행 한도 및 만기 제한이 없고 이사회 승인이 필요한 공모채와 달리 대표이사 직권으로 발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발행 절차가 간단하다는 이점이 있다. 신용등급 평가 부담까지 적어 선호도가 높다.

투자자풀과 금리 측면에서도 공모채와 차이를 보인다. 투자자를 미리 결정해 놓고 매칭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장기CP의 경우 시장 상황에 따라 유리한 금리 수준으로 조달이 가능하다. 협의 금리가 사전에 결정됨에 따라 대부분 개별 민평금리 이하 수준에서 할인율이 결정된다.

다만 장기CP 증가로 구축효과도 본격화되고 있다. 구축효과는 CP 발행이 늘어나는 대신 공모채 시장이 위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더벨 플러스에 따르면 올해 만기도래하는 공모채(여전채, 회사채)는 약 238조원으로 전년 대비 10조원 가량 늘었다. 이에 반해 지난 4월말 기준 공모채 발행 규모는 전년(52억9500억원) 대비 줄어든 44조546억원을 기록하며 사실상 장기CP가 감소폭을 채운 셈이다.



◇자본시장 충격 중심에는 늘 CP…모니터링 강화 필요

장기CP 발행량은 늘어나고 있지만 현재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외에는 마땅한 규제가 없다. 기본적으로 별다른 제약없이 기업의 신용에 기초해 발행하는 만큼 기업의 신용도가 탄탄할때는 상관없지만 위기때마다 취약한 모습을 보여왔기에 우려도 있다.

따라서 국내 자본시장에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문제의 중심에는 늘 CP가 있었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없었던 만큼 규제회피 수단으로 많이 사용돼 왔다. 이에 따라 발행시 금융당국의 감독을 피하고 사후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제한적인 접근이 이뤄졌다. 낮은 투명도로 투자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문제를 키웠다.

가장 먼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CP는 금리 우선자유화 등으로 발행이 크게 늘며 기업 부실의 주범으로 꼽혔다. 이후 2003년 '카드대란'때는 '옵션 CP(계속매매조건부 CP)'가 문제되며 머니마켓펀드(MMF)에도 영향을 미치며 발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이후 CP 시장은 일시적으로 위축됐다가 2005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부실을 숨긴 LIG건설이 CP 불완전판매로 당시 구자원 LIG 회장이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인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증시가 급락하자 주가연계증권(ELS)의 선물 증거금이 크게 늘어났다. 이에 증권사들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는 대신 CP 위주로 발행하면서 당시 유동성 부족과 금리 상승 문제를 야기시켰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에서 발행되는 CP가 중장기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이미 '기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CP는 통상적으로 270일 이내에서 공모를 면제해주는 게 통상적이다. 대부분 만기 90일 단기물을 발행해 계속 리볼빙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시장 관계자는 “국내에서 만기가 1년 이상의 장기CP는 규제회피 수단으로 많이 써왔다”며 “CP라는게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많고 전형적인 사모상품으로 적정한 규제 또는 사전 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에는 ESG 형태로 발행되는 사례까지 증가하고 있다. 2020년 우리카드가 첫 사례로 파악된다. 이후 올들어 우리카드와 함께 삼성카드까지 ESG 형태로 장기CP를 발행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실제로 ESG 목적에 쓰이는 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ESG에 대한 투자 수요가 있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CP의 경우 투자자가 공개되지 않고 투명성이 떨어지는 만큼 조달한 자금이 제대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확인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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