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지난해 최대 규모의 자본적지출(CAPEX)을 집행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계열사 배당 및 차입금 확대 등이 꼽힌다. 삼성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로부터 1조원이 넘는 배당수익이 들어왔고 단기차입으로만 5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쌓았다. 북미를 중심으로 글로벌 증설 작업을 본격화하며 최근 4년간 CAPEX 규모를 경신 중인데 늘어나는 자금 부담에 총차입 규모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SDI의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CAPEX 규모는 4조866억원으로 추산됐다. 전년도인 2023년 연간 CAPEX(4조607억원)를 이미 넘어선 수치로, 남은 4분기에 집행한 금액까지 더하면 4조원을 훌쩍 넘겨 삼성SDI는 4년 연속 CAPEX 경신을 기록한다.
그동안 이 회사는 무리한 글로벌 증설 대신 보유 현금 내에서 투자 계획을 수립해 집행했다. 국내 경쟁사들이 앞다퉈 북미 진출 계획을 발표하며 현지 투자에만 조단위 금액을 쏟아부을 때도 삼성SDI는 속도조절을 하며 2018~2021년 연간 2조원 내외의 금액만 CAPEX로 집행했다.
그러나 2022년 스텔란티스와의 합작법인 스타플러스가 출범하며 이러한 투자 기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북미 신증설의 시작을 알린 스타플러스를 필두로 헝가리, 말레이시아 등 기존 글로벌 공장의 생산능력 확충이 진행되며 2022년 CAPEX(2조8135억원)는 전년 대비 25% 급증했다. 이듬해에는 그 규모가 처음으로 4조원을 넘어섰고 투자 확대 기조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3분기만에 4조원의 금액을 CAPEX로 집행하기에 앞서 삼성SDI는 연초부터 계열사 배당을 통해 현금을 쌓았다. 먼저 지분 15.22%를 보유한 삼성디스플레이가 창사 후 처음으로 배당을 결정하며 삼성SDI의 곳간을 채웠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의 배당총액은 6조6504억원 규모로 삼성SDI는 이 회사로부터 올라온 배당금 1조124억원을 배당수익으로 잡았다.
삼성디스플레이 외에도 중국 우시법인(SDIW, 1068억원), 유럽법인(SDIEU, 148억원) 등 해외 자회사들이 처음으로 배당을 집행하거나 집행 규모를 늘려 모회사 삼성SDI로 올려보냈다. 지난해 삼성SDI가 인식한 배당금 수취액은 전년(2234억원) 대비 5배 이상 증가한 1조1549억원이었다.
다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기)으로 수익성이 꺾인 상황에서 지출이 늘었던 만큼 회사는 차입을 통해 추가로 자금을 조달했다. 3분기 누적 기준 삼성SDI는 매출 12조8378억원, 영업이익 555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6%, 50.4% 급감한 수치다. 총영업활동현금흐름(OCF)도 같은 기간 15.7% 감소한 1조900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사업을 통해 들어오는 현금이 줄면서 대신 차입을 일으켜 유동성을 확보했다. 삼성SDI의 3분기 말 연결 총차입금 규모는 9조1560억원으로 이중 절반 이상인 4조9400억원이 단기차입금이다. 총차입금이나 단기차입금 모두 최근 10년 사이 최대치를 찍었다. 총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1조7430억원)을 제외한 순차입금도 7조4000억원대까지 올라가며 이 역시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산에서 단기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하는 단기차입금의존도는 2023년 말 8.5%에서 지난해 3분기 14.3%로 5%포인트(p) 이상 올라갔다. 차입금의존도도 같은 기간 17.0%에서 24.0%로 뛰었다. 그동안 단기차입금의존도는 10% 안에서, 차입금의존도는 20% 이내로 각각 관리하던 회사 입장에서 차입 상환 부담이 예년보다 올라간 셈이다.
그럼에도 삼성SDI의 시설투자 기조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지난해 말 미국 스타플러스가 가동에 들어갔지만 가동률 상승을 위한 운영자금이 추가로 필요하고 2027년 양산을 목표로 제너럴모터스(GM)과의 북미 합작사 설립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삼성SDI가 북미 신증설을 위해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스타플러스에 출자한 금액은 총 1조1136억원 규모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