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반도체'라 불리며 한국 산업을 이끌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히던 배터리 산업이 혹한기를 지나고 있다. 그룹의 지원을 등에 엎고 전방위 투자에 나섰던 국내 업체들은 성장 침체로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예상보다 더딘 전기차 전환 흐름과 글로벌 정책 불확실성이 이어지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 성장기를 기다리며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더벨이 배터리 산업을 이루는 주요 업체의 재무 상황을 되짚어보며 그룹 차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연간 1조원 내외의 영업적자를 내던 SK온이 단번에 5000억~6000억원대의 수익성 회복을 노린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SK온 사업구조 개편(리밸런싱)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이종산업' 계열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과 SK엔텀을 붙인 효과다. SK온은 앞서 지난해 11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 합병을 마무리했고 오는 2월에는 SK엔텀 합병을 완료한다.
올해 미국 주요 투자를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들 2개사 합병으로 탄생한 통합법인은 영업현금 확보로 자본적지출(CAPEX) 부담 완화를 기대할 수 있다. SK트레이딩인터내셜과 SK엔텀 모두 SK이노베이션 계열의 정유·석유화학 물량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주요 계열사로 꼽힌다. 특히 앞으로 2~3년간 진행될 기업공개(IPO) 일정에 앞서 수익성 개선 및 증설 작업이 병행되며 향후 통합법인의 성과에 따라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기업가치 향방도 결정될 전망이다.
◇'일시' 분기 흑자, 수익성 확보 '리밸런싱' 단행
SK온은 지난해 3분기에 설립 후 첫 분기 흑자(240억원)를 기록했다. 당시 분기 매출 1조4308억원에 비교하면 영업이익률(2%) 자체가 높진 않지만 그동안 회사가 목표로 하던 손익분기점(BEP) 도달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다만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생산세액공제(AMPC)분 608억원을 제외하면 여전히 적자 상태였다.
AMPC 반영으로 첫 분기 흑자를 내긴 했으나 그동안 SK온에 지속되던 재무부담이 경감되진 않았다. 2020년대 들어 진행한 유럽 헝가리, 미국, 중국 등 글로벌 전역의 증설 작업이 계속되며 SK온의 차입금과 CAPEX는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SK온이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설립한 2021년 말 4조5400억원 수준이던 총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말 20조6300억원으로 3년 사이 4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40기가와트시(GWh) 수준이던 SK온 글로벌 생산능력을 111GWh까지 키우는 과정에서 매년 조단위 CAPEX를 집행한 결과다. SK온의 CAPEX 집행 규모는 2022년 4조9000억원에서 이듬해 2배 이상인 9조8000억원대로 뛰었고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도 7조8500억원의 CAPEX를 집행했다.
자체적인 투자 여력이 부족했던 SK온은 이 기간 유상증자를 통해 모회사 SK이노베이션 및 재무적투자자(FI) 등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 1조원대 연간 적자를 낸 2022년 258%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 확충으로 차차 떨어지며 지난해 3분기 말 170%로 내려왔다. 같은 기간 수조 단위의 CAPEX 집행에도 현금성자산 규모는 3조5350억원에서 2조1743억원으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
다만 아직 SK온 자체 사업만으로 현금창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에 SK이노베이션은 그룹 리밸런싱을 통해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과 SK엔텀을 SK온에 붙여 수익성 개선 효과를 노리고 있다. 2013년 SK이노베이션의 에너지 트레이딩 조직이 분사해 출범한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은 원유·석유화학 제품 트레이딩 물량을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회사다.
SK온 합병 결정 전 2년(2022~2023년) 동안 60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내며 SK온의 적자를 상쇄할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1조원 내외의 SK온 적자를 한번에 만회하긴 힘들어도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의 영업망을 기반으로 원소재 공급망 확보 등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
특히 이 회사는 트레이딩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 특성상 연간 CAPEX가 10억원 아래에 머물며 SK온 연결 CAPEX에 추가 부담을 지우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초 출범해 올해 2월 SK온에 피합병 예정인 SK엔텀 역시 계열사 원유·석유화학 물량을 기반으로 탱크터미널 사업을 영위해 연간 500억원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곳으로 알려졌다.
◇SK온 수익성 개선, SK이노 '밸류업' 포함
그동안 외부 자금을 유치하며 투자를 집행한 SK온은 올해를 기점으로 대내외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다음달 SK엔텀 합병을 끝으로 3사 통합 작업을 완료하며 블루오벌SK(미국 포드 합작사), 현대차그룹 북미 합작사(HMG JV) 등이 연말께 가동에 돌입한다.
신공장 가동을 위한 자금의 일부는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엔텀 등 사업부에서 창출하는 현금으로 충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3사 합병에 따른 시너지 창출과 신규 공장의 안정적인 가동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며 시장 기대치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는 배경이다.
시장에선 SK온의 IPO 시점이 내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FI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SK온은 2026년 상장(상호 합의 하에 2028년까지 연장 가능)을 약속한 상태다. SK온의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도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SK온 상장 시 자사 주주에게 SK이노베이션 주식과 SK온 주식을 교환할 기회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미 SK이노베이션은 단순 정유·석유화학 기업을 넘어 배터리 업체로 인식되고 있다. 회사 역시 배터리 업체를 피어그룹에 포함해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수립하는 등 SK온 정상화에 집중하고 있다. SK온의 수익성 개선을 위해 변화를 시도한 것 역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여러 방편 중 하나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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