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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해빙(海氷)과 해빙(解氷)

고진영 기자  2024-11-18 07:50:49
최근 여의도 공원에 철쭉이 피었다. 제철은 4월인데 이른 건지 늦은 건지. 이상기온에 헷갈린 꽃들이 무더기로 길을 잃고 있다. 때를 착각하고 봉오리를 피우는 ‘불시 개화’가 전국에서 벌어지는 중이란다. 안 추워서 좋다기엔 불길한 따뜻함.

이런 날씨에 북극의 바다얼음은 위태로운 파수꾼이다. 해빙(海氷)이라 불리는 하얀색 얼음이 녹아내리면 짙은 바닷물이 노출되고 에너지 반사율 '알베도'가 낮아져 기온이 오른다. 검푸른 바다의 아름다운 빛을 불행의 징조처럼 경계해야 하는 셈이다.

얼음처럼 견고했던 삼성전자의 균열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2021~2022년 연속으로 최대 매출을 찍었을 때만 해도 얼핏 좋아보였다. 문제는 그 시기 별도 엉업활동현금흐름이 오히려 약해졌다는 점이다. 영업현금 상당부분을 감가상각비가 지탱, 웬만해선 캐시플로가 흔들리기 어려운 회사인데 재무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애초부터 이미 조짐은 보였다. 매출이 뛰었지만 마진이 따라와주지 않았다. 원가 대비 부가가치가 떨어져 있었단 뜻이다. 하지만 악재 예고를 알아차리기엔 외형 확대의 기쁨이 좋았다. 당시 삼성전자는 코로나가 풀리면서 생긴 공급 쇼티지(shortage)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반도체를 엄청나게 양산해냈다.

2021년엔 21조원에 달하는 특별배당금을 지급한다. 미래를 낙관하기도 했고 이재용 회장 역시 사면을 앞두고 있었다. 유동성이 대거 빠져나가자 그 해 보유현금이 19조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원래 삼성전자는 본사에 30조원 안팎의 현금을 유지하는 회사다. 그러고도 규모에 비해 돈을 적게 쌓아둔다고 정평이 나 있었는데 거기서 더 축소됐다.

현금이 적정 수준에 미달한 만큼 다시 채워넣어야 했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금리가 치솟으면서 반도체 수요는 확 줄어든다. 재고가 천정부지로 쌓였다. 그래서 외상을 늘려서라도 물건을 팔고 결제는 늦어졌다. 삼성전자의 잉여현금흐름이 3년 전부터 마이너스를 보이고 있는 배경엔 이런 사정이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달 기어코 4만원대로 떨어졌다. 5만원대를 회복하긴 했으나 시장의 투심이 돌아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두꺼운 해빙이 되려면 수년간 녹았다가 결빙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 삼성전자는 다시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제 해빙(解氷)의 전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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