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B(investment banker)는 기업의 자금조달 파트너로 부채자본시장(DCM)과 주식자본시장(ECM)을 이끌어가고 있다. 더불어 인수합병(M&A)에 이르기까지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해결사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워낙 비밀리에 딜들이 진행되기에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되기도 한다. 더벨은 전문가 집단인 IB들의 주 관심사와 현안, 그리고 고민 등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해 보고자 한다.
SK온이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통해 1조원 조달에 나선다. 유상증자로 발행한 신주를 PRS 계약의 기초 자산으로 삼는 구조다. 조달 소식이 전해지자 IB들은 SK온의 IPO(기업공개) 계획에 다시금 관심을 보인다.
SK온의 PRS 계약 소식에 왜 IPO가 언급될까? 비상장사의 PRS 계약인 점에 그 해답이 있다. PRS는 미래의 기업가치 변동을 전제로 맺는 계약이다. 현 시점과 계약 만료 시점 밸류에이션이 필수란 의미다. 상장 전인 지금은 계약 당사자들간 협의로 28조원을 웃도는 기업가치를 매겼다.
계약 만료 시점엔 상장 주가를 기반으로 밸류에이션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비상장사의 PRS 계약 시, IPO 의무 조항을 넣기도 한다. 1조원을 조달해 시간적 여유를 마련한 SK온의 향후 자본시장에서의 행보에 업계 전반의 눈이 쏠린다.
◇PRS 통한 제3자배정 유증…1조 조달 행보
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온이 보통주 1803만1337주를 발행하는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 계획을 밝혔다. 전체 발행 주식 수의 3.7% 규모로 분석된다. 신주 발행 가격은 5만5459원으로 전체 유상증자 규모는 약 1조원이다. 납입일은 이달 15일이며, 신주권 교부 예정일은 16일이다.
유상증자로 발행한 신주는 PRS 계약의 기초자산으로 활용된다. PRS는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수익 또는 손실을 산정하는 파생상품이다. 재무적 투자자는 수수료 수익과 원금을 보장받을 수 있고, SK온은 자산유동화로 자금을 확보하는 구조다. 주가 수익을 제외한 권리를 FI에게 이전한다는 점에서 소유권을 가진 계약 방식인 TRS(Total Return Swap)와는 차이가 있다.
FI로는 한국투자증권, 신한은행, 신한투자증권, KB증권 등이 꼽힌다. 한국투자증권은 자체 인수 물량과 특수목적법인(SPC)를 통해 4000억원을 투자한다. 이어 KB증권은 2000억원을, 신한은행은 2700억원, 신한투자증권은 1300억원을 투입한다. 이들 금융사들도 모두 SPC를 활용한다.
이번 딜에 참여하는 FI는 SK온에 대한 의결권, 배당권, 처분권 등의 법적 권리를 갖지만 주식 처분 과정에서 차익 발생 시 SK온이 정산해 돌려받는 구조다. 반대로 처분가격이 낮으면 SK온이 차액을 보존하는 형태다.
SK온의 자금 조달을 위해 PRS를 택한 사유 중 하나론 기존 투자자들과의 갈등 해소가 거론된다. SK온은 수차례 자금 투자를 유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한 바 있다. 프리IPO 방식으로 새롭게 투자를 받으면 기존 투자자들과의 협의를 필수로 한다. PRS는 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올리는 거래 방식이기에 일반적인 투자와는 거리가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SK온의 자금 조달을 두고 여러 해석이 오가는 상황"이라면서도 "기존 재무적 투자자들과의 잡음 없이 수수료 기반의 계약으로 조달을 하는 PRS가 최선의 선택지였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IPO 전제 계약 '한 목소리'…FI들 28조 밸류 '합의'
일각에선 비상장사의 PRS인 점을 두고 IPO를 염두에 둔 선택이란 평을 내놓기도 했다. 계약 단가를 산정하기 위한 밸류에이션의 측면에서 비상장사는 한계가 있다. 거래자들간 협의 끝에 현 시점 기업가치를 매긴 후 계약 만료 시점 밸류에이션은 상장 후 시가총액을 기반으로 할 것으로 분석된다.
SK온의 이번 증자 단가(5만5459원)를 기반으로 추산한 시가총액은 약 28조331억원이다. 앞서 알려진 단가(22조원)와 비교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만일 상장 이후 단가가 현 시점보다 높을 경우 상장 차익도 기대해 볼 수 있는 구조다.
앞서 SK디스커버리가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 지분을 처분할 때도 PRS로 진행한 이력도 있다. 당시 SK건설은 비상장사였는데, 지주사 요건 충족과 상장 차익 등을 고려해 PRS를 택한 바 있다.
또한 PRS는 거래 상대방이 자산의 소유권을 갖기에 해당 내역이 부채로 산정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여러 측면에서 SK온이 선택할 수밖에 없던 딜이란 게 IB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 의견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비상장사의 PRS 계약은 상장을 전제로 한다는 게 일반적"이라며 "IPO 의무조항을 달기도 하는데 계약 종료 시점의 밸류에이션 용이성과 손실 리스크 회피를 위한 선택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