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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텍 유증·메자닌 승부수

'비만치료' 펩트론, 기술이전 지연에 불가피했던 '조달'

1200억 규모 유상증자 의결, 지속형 의약품 생산시설 확보 위한 선제적 투자

한태희 기자  2024-08-19 15:49:36

편집자주

투자 유치는 곧 기업의 능력이다. 특히 뚜렷한 매출원 없이 막대한 자금을 연구개발(R&D)에 쏟는 바이오 기업에 있어 자금 확보는 '생명줄'과도 같다. 다만 투자금 규모에 따라 기업의 지배구조는 물론 기존 주주의 주식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자금 조달 목적 및 투자 조건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펀딩난 속 자금을 조달한 기업과 이들의 전략을 짚어본다.
펩트론은 '위고비'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주목과 함께 떠오른 기업이다. 약효 지속형 플랫폼 '스마트데포'를 활용해 기존 약물의 반감기를 늘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됐다. 작년 초까지 2000억원을 밑돌던 시가총액은 올해 들어 1조원을 넘겼다.

작년 6월에는 글로벌 빅파마와 가계약(텀시트)을 체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확정된 기술이전 계약은 나오지 않았다. 현금 곳간이 마르며 연구개발비 마련이 필요했고 공장 건설 등 선제적 투자를 위해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주가 하락에 조달 규모 축소 가능성, 최대주주는 '블록딜' 예고

펩트론은 최근 이사회를 통해 1200억원 규모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의결했다. 신주배정기준일은 9월 23일, 청약기간은 10월 28일부터 29일까지다. 주금납입일은 11월 5일이고 신주 상장예정일은 11월 18일이다. 대표주관사는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이다.

유상증자로 기발행주식의 12.78%에 해당하는 264만주가 추가로 발행된다. 신주의 예정발행가액은 4만5450원으로 보유주식 1주당 0.12441주를 배정한다.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이후에도 미청약된 주식은 주관사가 자기계산으로 잔액인수한다.

이번 유상증자는 펩트론이 처한 재무 사정과 연관이 있다. 올해 1분기 현금성자산은 25억원인 반면 작년 한 해 연구개발비는 139억원에 달했다. 기술이전 계약에 따른 선급금 수령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운영비 확보를 위한 자본시장 내 조달이 필요했다.


유상증자 결정 후 첫 거래일 주가는 급락했다. 19일 오후 3시 기준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12.9% 낮아진 5만500원이다. 확정발행가액 결정까지 이 흐름이 지속되면 조달 규모가 더 줄어들 수 있다. 확정발행가액은 1차, 2차 발행가액 중 더 낮은 가액으로 정한다.

1차 발행가액은 신주배정기준일전 제3거래일 거래대금과 거래량으로 1개월, 1주일, 기산일 주가를 산술평균해 낮은 금액 기준 25% 할인율을 적용한다. 2차 발행가액은 구주주 청약일전 제3거래일 기준 거래대금과 거래량으로 1주일, 기산일 주가를 산술평균해 낮은 금액 기준 25% 할인율을 적용해 산정한다.

최대주주의 지분율 희석도 위험요소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최호일 대표는 배정받은 물량 청약에 50%만 참여한다. 필요 자금은 약 49억원으로 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주식 일부를 블록딜로 매각할 예정이다. 최 대표의 유상증자 후 지분율은 1.5%p 하락한 6.87%다.

펩트론 관계자는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방어하기 위해 황금낙하산 조항 등 안전장치를 마련했다"며 "대표이사가 배정 물량의 50% 청약에 참여한다는 건 최소치로 상황에 따라 추가로 물량을 인수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약효지속화 플랫폼 상업화 포석, GMP급 신축공장 설립

운영비 마련 목적 외에도 전체 조달 자금의 54.2%인 650억원을 시설자금에 투입한다는 점에 주목된다. 오송바이오파크 연구소 내 유휴 부지에 GMP급 신축공장을 설립하고 임상 및 연구개발과 양산을 대비한 생산설비 구축에 나선다.

펩트론은 펩타이드 공학 및 약효지속화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텍이다. 롱액팅 플랫폼 '스마트데포'를 적용한 신약을 연구개발한다. '스마트데포'는 반감기가 짧아 자주 주사하는 펩타이드 약물의 투여 주기를 늘릴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 GLP-1 계열 당뇨·비만치료제 시장이 성장하며 재조명되고 있다. 주 1회 투여하는 기존 제품의 효과를 유지하며 지속 기간을 4배 이상 늘리는 기술이다. 이번 투자는 제품의 상업화 생산을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1000만 바이알 규모 생산능력을 확보한다.

펩트론의 주가는 후보물질의 기술이전에 대한 기대감 속 작년에만 5배 넘게 올랐다. 2022년 9월 글로벌 제약사 2곳과 당뇨·비만치료제 'PT403'의 기술이전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같은해 12월에는 한 빅파마와 물질이전계약(MTA)를 체결했다고 알렸다.

작년 6월에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당뇨병학회(ADA)에서 당뇨·비만치료제 후보물질의 기술수출 계약 텀시트를 수령했다고 밝혔다. 이후 실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알려진 계약 내용은 없다.

펩트론 관계자는 "무조건 기술이전이 된다는 전제로 움직일 수는 없다"며 "확정된 부분이 없고 예측이 불가능해 위험성이 따르므로 자금 조달 일정에 맞춰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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