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B들에게 대기업 커버리지(coverage) 역량은 곧 왕관이다. 이슈어와 회사채 발행이란 작은 인연을 계기로 IPO와 유상증자 등 다양한 자본조달 파트너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기업들이 증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탄탄한 트랙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실력이 될 수도 있고, 오너가와 인연 그리고 RM들의 오랜 네트워크로 이어진 돈독한 신뢰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기업과 증권사 IB들간 비즈니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좀 더 깊게 살펴본다.
KB증권이 7년 만에 한화손해보험과 호흡을 맞춘다. 한화 그룹사와 원만한 관계를 이어온 하우스지만 그동안 한화손보가 발행하는 자본성 증권의 주관은 NH투자증권의 몫이었다. 과거 현대증권과 합병하기 전인 2016년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거래 관계가 없었다.
오랜 적막은 2년 전 한화손보가 공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당시 투심 악화로 대규모 미매각 물량이 발생했지만 KB증권이 추가 청약에 참여, 적극적인 주문을 넣으며 우군을 자처했다. 이를 계기로 주관 지위를 따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한화손보 후순위채 2000억 발행 추진…KB증권, '7년 만에' 주관사단 합류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손해보험은 이달 말 20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를 발행한다. 10년 단일물로 5년 뒤 조기 상환할 수 있는 콜옵션이 함께 붙어 있다. 오는 21일 기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이 실시될 예정으로 결과에 따라 최대 35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할 수 있다. 전반적인 주관 업무는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맡았다.
한화손보가 2년 만에 자본성 증권을 발행하는 가운데 KB증권의 주관사단 합류가 특히 주목된다. 이 하우스는 그동안 한화손보와는 특기할 만한 거래 관계가 없었다. 가장 최근에 KB증권이 한화손보의 자본성 증권을 취급했을 때는 과거 현대증권과 합병하기 전 KB투자증권 시절인 2016년이다.
사실상 NH투자증권이 한화손보의 자본성 증권 발행을 독식하는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2010년대 이후 기준, NH증권 역시 2016년 KB증권과 함께 한화손보의 후순위채를 처음으로 주관했다. 그러나 이후 한화손보의 자본성 증권 발행 때마다 주관 지위를 획득하면서 KB증권과 길을 달리 했다.
KB증권이 한화 그룹 계열사 대부분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다소 의아한 결과로도 보인다. 8일 기준 올해 공모 회사채 시장에 등판한 한화 계열사는 8곳으로 KB증권은 이중 5곳과 주관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인 한화솔루션과 한화에너지, 한화호텔앤드리조트도 KB증권과 빈번하게 교류하던 곳에 해당한다.
◇2년 전 신종자본증권 미매각 당시 '우군' 자처…주관사단 복귀 '계기' 마련
KB증권이 한화손보의 부름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22년 9월에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화손보는 850억원 규모의 30년 만기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 위해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주관사단으로 선임한 바 있다.
당시 흥국생명, 롯데손해보험 등의 자본성 증권이 연이어 미매각을 내자 희망 최고금리 6.5%를 내세워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단 1곳의 기관이 참여해 10억원의 주문을 냈을 뿐, 나머지 840억원은 시장에 팔리지 못한 것이다. 고금리 매력을 어필했지만 신용등급이 'A+'급에 머무른 탓에 투자 매력이 반감된 영향이 컸다.
이때 KB증권이 우군을 자처하며 한화손보를 도왔다. 수요예측 미매각 이후 추가 청약에서도 10억원만이 들어와 결국 주관사단이 나머지 미매각 물량을 떠안았다. 구체적인 주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KB증권이 추가 청약에 참여해 상당량의 주문을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화손보가 가장 최근에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던 당시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KB증권이 청약할 때 주문을 많이 넣었다고 한다"고 하면서 "최종 미매각을 피할 순 없었겠지만 그때의 순간이 한화손보에도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투자 유인이 크지 않았음에도 도움의 손길을 줬던 것이 7년 만에 주관사단에 복귀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는 후문이다. 통상 은행 지주 계열 증권사들이 신종자본증권을 인수하면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해 보통주자본(CET1) 비율에 영향을 미쳐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청약에 나서면서 발행사의 신임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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