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하 CIO)의 자리는 무겁다. 어느덧 국민연금 투자자산규모는 1000조원을 웃돌고 있고,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한 우려는 만성적이다. 운용 수익률에 대한 책임감이 크지만 성과를 실현할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정치적 외풍 등 외부 변수 탓에 지난 10년간 국민연금 CIO 가운데 임기 재연장 사례는 드물다.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라도 CIO 업무 연속성의 필요성이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
◇ 투자자산 1000조 육박, 임기는 고작 2년 지난 2014년부터 10년 동안 국민연금 CIO의 임기를 살펴보면 기간이 연장됐던 인물은 안효준 전 CIO 한 명에 그친다. 통상 국민연금 CIO의 임기는 2년으로 성과에 따라 1년씩 연장되는 구조다. 2014년 홍완선 전 CIO는 취임 이후 연장 없이 2년의 임기로 자리를 내려왔고, 그 뒤를 이었던 강면욱 전 CIO는 임기 2년을 채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사의를 표했다.
정치적 변수가 국민연금 CIO 자리에 미치는 영향이 큰 탓으로 풀이된다. 홍 전 CIO는 자리에서 물러난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유죄를 받았다. 강 전 CIO 역시 선임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임기 중 삼성물산 합병 후유증과 인사 실패 등이 겹치며 결국 임기 도중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국민연금 CIO는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책임이 막중하다. 어느덧 국민연금 기금운용 자산이 복지부문 포함 1000조원을 웃돌게 되면서 수익률 성과를 두고 국민들의 눈초리가 매섭다. 어느 때보다 뚝심 있게 기금운용을 끌고 나갈 수 있는 CIO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짧은 임기, 적은 연봉, 정치적 외풍 등의 이유로 국민연금 CIO는 끊임없이 자리의 위협을 받고 있다. 국민연금 CIO 자리를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이 쓰이는 배경이다.
그나마 안효준 전 CIO는 4년의 임기를 채우며 역대 최장기 CIO에 올랐다. 2018년 부임 직후인 2019년 기금운용본부는 설립 이래 최고 수익률(11.3%)을 냈고 2020년 9.58%, 2021년 10.86%로 꾸준히 좋은 성적표를 거뒀다. 국내 주식시장이 역대급 호황이었던 데다 해외투자나 대체투자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던 덕분으로 풀이된다.
◇ 서원주 CIO, 해외·대체투자에 방점 서원주 CIO는 최장수 CIO로 자리매김한 안 전 본부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다소 부담스러운 자리에 오르게 됐다. 안 전 CIO가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수장으로 꼽힌 데다 서 CIO가 자리에 오른 그 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8.28로 역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만 서 CIO는 부임 이후 일년 간 전체 수익률 13.6%를 내며 반등에 성공했다. 해당 기간 수익금은 92조원 가량으로 2022년 평가손실 약 80조원을 모두 만회했다. 해외주식과 국내주식에서 각각 17.76%, 16.5% 수익률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끌었다. 글로벌 긴축 완화 기대감과 개별기업 실적 호조에 따라 운용수익률이 개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서 CIO는 지난 3월 기금운용성과 설명회에서 향후 대체투자와 해외투자 등의 비중을 늘려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고령화로 기금 고갈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점을 반영했다는 평가다. 안전자산인 채권 비중을 줄이고 국내 및 해외투자 규모를 더욱 늘려갈 전망이다.
실제로 2023년 전체 기금 중 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38.6%에 그쳤다. 사상 처음 30%대로 떨어졌다. 주식 비중은 약 46%로 2022년 말 41.1%에서 약 4.9%포인트 증가했다. 해외주식 투자 역시 규모를 늘리고 있다. 2023년 해외투자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역대 최초로 국내투자 비중을 웃돌았다.
수익률 제고와 더불어 서 CIO의 또 다른 중요 과제는 '위험분산'이 꼽힌다. 안전자산보다는 주식비중을 높이는 과정에서 변동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를 감안해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일각에선 이 부문 역시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실제 최근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던 국내 금융사들이 잇따라 손실에 노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