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IB들에게 대기업 커버리지(coverage) 역량은 곧 왕관이다. 이슈어와 회사채 발행이란 작은 인연을 계기로 IPO와 유상증자 등 다양한 자본조달 파트너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기업들이 증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탄탄한 트랙레코드를 기반으로 한 실력이 될 수도 있고, 오너가와 인연 그리고 RM들의 오랜 네트워크로 이어진 돈독한 신뢰감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기업과 증권사 IB들간 비즈니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스토리를 좀 더 깊게 살펴본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조달니즈가 사그라들지 않으면서 증권사 IB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시장에서 'AA+,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현대차와 기아의 발행 가능성은 낮지만 여타 계열사들의 수요는 지속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공백을 감안해도 최근 현대차 계열사들의 공모채 조달 규모는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연초 발행을 마쳤던 현대케피코, 현대트랜시스, 현대제철 등은 여전히 발행 니즈가 확인돼 RM(Relationship Manager)들이 뭍밑 접촉 중이다.
◇계열사 조달니즈 '지속' 감지…현대케피코·현대트랜시스·현대제철 '주목'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복수의 증권사 RM들이 현대자동차 계열사들의 회사채 조달을 위한 물밑 접촉에 돌입했다. 현대차 그룹은 2분기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공모채로 조달했지만 여전히 발행 수요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 RM들의 전언이다.
이중 현대제철은 공모채 발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발행 규모와 주관사단의 윤곽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오는 9월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을 차환하기 위한 목적의 발행이 유력하다. 해당 물량은 현대제철이 2017년 찍은 회사채로 규모는 1100억원이다.
연초 발행을 완료한 현대케피코와 현대트랜시스도 잠재적 후보다. 둘 모두 실제 발행 준비에 돌입한 것은 아니지만 현대케피코의 경우 오는 9월 600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있다. 현대트랜시스도 오는 6월 만기 도래 물량이 있지만 연초 발행 당시 조달한 자금으로 상환을 완료했다. 조달에 착수한다면 운영 자금 확보가 주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로템은 이번에는 공모채 시장을 찾지 않을 것으로 점쳐진다. 매년 공모채 시장을 찾은 정기 이슈어지만 방위 산업 호황에 힘입어 캐시플로우가 개선되면서 굳이 회사채를 찍을 필요가 없어졌다. 오는 6월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물량도 보유 현금으로 상환할 방침이다.
시장에서 'AA+,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현대차와 기아의 복귀전은 이번에도 기약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IB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기아나 현대모비스 같은 곳들은 보유 현금이 많아 공모채를 활용한 조달이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공백 메우는 계열사들…커버리지 역량 '집중'
비록 현대차와 기아가 최근 몇 년간 공모채 시장을 찾지 않고 있지만 여타 계열사들의 조달 러시가 양사의 발행 공백을 메우고 있다. 초우량 이슈어의 명성에 걸맞게 현대차와 기아는 그간 그룹 내에서도 상당한 물량을 차지해왔다. 가장 최근 공모채 시장을 찾았던 2020년과 2021년에는 그룹 발행 총액의 약 25%를 책임졌다.
양사의 발길이 끊긴 2022년 이후 그룹 발행량은 감소했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다시 공모채 조달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공모채로 1조4700억원을 모은 현대차 그룹은 올해 3월까지 1조44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금융채(FB) 조달 규모도 2022년부터 꾸준히 10조원 이상 소화하며 현대차와 기아의 발행 공백을 메워왔다.
물론 일반 회사채(SB)의 경우 현대차와 기아를 제외한 계열사들이 올해 2조원 이상을 소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발행 니즈가 확인돼도 금리 인하 시점이 계속 지연되면서 확실한 발행 시그널이 접수된 곳은 현대제철 정도에 불과하다.
차입금 축소 기조를 취하고 있는 계열사들의 존재도 변수다. 현대로템 외에도 매년 그룹 내에서 꾸준히 공모채를 찍었던 현대위아 역시 지난 4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 도래 물량을 현금으로 상환하는 모션을 취했다.
그럼에도 증권사 IB들은 현대차 그룹에 대한 커버리지 역량이 분산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를 제외해도 2021년 2조원을 찍어내는 등 계열사들이 소화하는 공모채 규모가 상당하다는 점에서다. 모회사의 우량한 실적과 신용등급도 뒷받침되어 있어 조달 니즈가 있는 곳들은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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