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유동성 풍향계

HD현대케미칼 현금흐름 좌우한 'HPC 설비'

설비투자 종료, FCF 유출 5년새 최소…영업현금 기여도는 업황회복 이후 판가름날 듯

박동우 기자  2024-04-16 14:07:11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HD현대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의 합작을 계기로 2014년에 출범한 석유화학 기업이다. 최근 5년새 회사 현금흐름을 좌우한 변수는 '중질유분해설비(HPC)'였다. HPC는 저렴한 원료를 투입해 에틸렌,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설비로 원가 경쟁력 확보와 실적 퀀텀점프를 동시에 실현하는 구상과 맞물렸다.

3조4000억원 규모 HPC 투자금을 집행하는 동안 HD현대케미칼의 연간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1조원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설비 투자를 마친 지난해 FCF 유출 규모는 5년새 최소치인 -1000억원에 그쳤다. HPC 설비가 본업 현금창출력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 여부는 석유화학 업황 회복 이후에 판가름 날 전망이다.

지난해 HD현대케미칼의 잉여현금흐름은 980억원 유출로 집계됐다. 영업활동현금흐름 1561억원에서 자본적지출(CAPEX) 2542억원 등을 차감한 금액이다. 2018년 이래 지난해까지 잉여현금흐름 추이를 살피면 2019년 4811억원 유출을 시현한 이래 해마다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2021년 -1조6586억원으로 유출 규모가 최대를 기록했으나 작년 들어서는 최소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중질유분해설비(HPC) 투자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한 대목이 잉여현금흐름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HD현대케미칼은 HPC 설비를 구축하는데 3조4000억원을 집행했다. 같은 기간 CAPEX 합산액 4조1156억원의 82.6%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HD현대케미칼이 '조' 단위 잉여현금흐름 유출을 감내하면서 투자에 힘을 쏟은 건 HPC가 지닌 원가 경쟁력이 실적 향상에 도움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HPC는 나프타(납사) 대비 구매단가가 20% 이상 저렴한 탈황중질유, 부생가스를 원료로 투입하는데 방점을 찍었다. 이를 통해 연간 에틸렌 80만톤, 폴리프로필렌 55만톤, 부타디엔 14만5000톤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췄다.


다만 HPC의 상업생산은 완전한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HPC 가동률이 2022년 58%였으나 지난해 38%로 20%포인트 하락했다. 세계적 수요 위축 여파로 유가와 정제마진이 떨어지면서 석유화학업계 업황이 위축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HD현대케미칼 매출은 5조7700억원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2022년 당시 8조1112억원과 비교하면 2조3412억원(28.9%) 적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도 4.1%에서 0.03%로 4.07%포인트 급락했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1561억원으로 2022년 1673억원보다 6.7%(112억원) 줄었는데 운전자본 투자를 1353억원 경감하며 영업현금 감소폭을 상쇄했다.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현금창출력이 저하되면서 재무안정성 지표 악화가 가중됐다. 지난해 말 순차입금은 3조6943억원으로 1년새 1115억원(3.1%) 늘었다. 5년 전인 2018년 7376억원과 견줘보면 5배 많아졌다. 차입금의존도 역시 2018년 말 44%에서 2023년 말 60.7%로 16.7%포인트 상승했다.

본업 현금창출력을 제고하려면 석유화학 업황 회복이 관건이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등의 생산에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돼야 원가 경쟁력을 갖춘 HPC 설비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HPC 설비의 현금창출력 기여도가 석유화학 경기 업사이클(호황)에 진입하는 국면에서 제대로 드러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된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HD현대케미칼 관계자는 "HPC 설비 준공 당시 원료 투입의 선택 폭이 한층 넓어져 현금창출력 제고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현재 전반적인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HPC 설비의 긍정적 효과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고 있으나 점차 발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