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제조사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실적 변동성을 좌우하는 핵심요소는 스포츠 패션 기업 '아디다스(Adidas)'다. 아디다스 브랜드가 붙은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핵심 협력사로 입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안정적 거래선을 구축한 덕분에 매출이 6년새 3배 가깝게 늘었다.
하지만 아디다스의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면 화승엔터프라이즈 역시 덩달아 어려움에 처하는 취약점도 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 부진 여파로 아디다스가 재고 축소에 나서면서 보수적인 발주 기조를 채택했다. 자연스레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수익성 저하, 영업활동현금흐름 감소로 이어졌다.
◇해외 제조법인 관리, 베트남·중국 생산기지 2015년에 출범한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신발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사업을 수행하는 기업이다. 해외법인 '화승비나'의 자금 조달을 염두에 두고 설립됐다. 화승비나는 2002년 베트남 동나이성에 연간 1200만족의 신발을 양산하는 시설을 조성했다. 동남아 공장은 핵심 고객사인 아디다스 브랜드 운동화를 납품하는 거점으로 부상했다.
아디다스는 2010년대 들어 화승그룹에 베트남 캐파(생산능력) 확장을 꾸준히 요청했다. 하지만 화승비나의 모기업이던 화승인더스트리는 300% 웃도는 부채비율과 1000억원에 못 미치는 유동성을 감안하면 자체적인 자금조달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대신 신규법인을 상장시켜 확보하는 자금으로 동남아 공장을 증설하는 로드맵을 수립했다.
화승인더스트리는 화승엔터프라이즈를 세운 뒤 화승비나 지분 일체를 화승엔터프라이즈에 현물출자했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2016년 10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입성했다. 당시 공모자금 934억원 가운데 92.9%(868억원)가 화승비나로 유입됐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글로벌 시장에 포진한 신발 생산 계열사들의 경영을 관리하는 역할에 주안점을 맞췄다. 베트남 법인 화승비나 외에 중국 장천제화유한공사, 화승인도네시아 등의 100% 자회사도 거느렸다. 지난해 말 기준 종속기업은 국내 3개사, 해외 21개사 등 24곳으로 집계됐다.
출자한 기업 가운데 화승크라운과 대영섬유는 인수·합병(M&A) 전략과 사업 다각화 기조가 투영된 산물이다. 화승엔터프라이즈가 누적 389억원을 집행해 70%의 지분을 보유한 화승크라운은 2019년 5월에 베트남 모자 제조사 유니팍스를 인수했다. 대영섬유는 2022년에 의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장을 확보했다.
◇아디다스, 신규 주문 대신 '재고 감축' 주력 수익원 다변화 노력에도 여전히 '아디다스'가 지니는 존재감은 상당하다. 아디다스그룹에서 화승엔터프라이즈가 공급한 제품이 전체 벤더 납품량 대비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2016년 13% △2018년 15% △2022년 21% 등으로 오른 대목이 방증한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바이어인 아디다스로부터 협력업체 중 납품속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고 강조해 왔다. 아디다스 측과 안정적인 거래선을 구축한 대목은 외형 성장의 촉매가 됐다. 2016년 말 6402억원을 기록한 연간 매출이 2022년 말 1조6540억원으로 6년새 2.6배 불어난 배경이다.
하지만 아디다스의 경영 여건이 나빠지면 화승엔터프라이즈에 악재로 작용한다. 이달 1일 아디다스가 발표한 2023년 실적 잠정치를 살피면 순매출은 214억2700만유로(30조9142억원)다. 2022년 225억1100만유로와 견줘 4.8%(10억8400만유로)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전년대비 60% 감소한 2억6800만유로(3866억원)에 그쳤다.
인플레이션 현상이 계속 이어지고 세계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소비 수요가 감소한 영향이다. 아디다스 역시 생산 주문을 늘리기보다는 쌓인 제품 물량을 해소하는데 주력했다. 아디다스가 보유한 재고는 2022년 9월 말 63억6000만달러(8조4817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줄었고 지난해 3분기 말에는 52억7800만달러(7조387억원)를 기록했다.
아디다스가 보수적인 발주 기조를 채택하면서 화승엔터프라이즈 수익성이 둔화됐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률은 0.6%로 2022년 1~9월 3.8%보다 3.2%포인트 하락했다. 판매관리비가 전년 동기대비 1%(11억원) 늘어난 1074억원을 시현하는 등 비용을 제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순이익률 역시 마이너스(-) 2.2%로 나타났다.
현금창출력도 빠르게 약화됐다. 작년 1~9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585억원으로 2022년 3분기 누적 1028억원과 비교해 443억원(43.1%) 적다. 영업활동현금흐름 역시 433억원에서 100억원으로 333억원(76.9%) 줄었다. 2022년 연간 순유입분 968억원과 견줘보면 868억원(89.7%)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