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채권단은 95% 동의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 개시를 찬성했다. 정부와 KDB산업은행 주도 구조조정에 우선 동의한 모습이다. 기업 해체 수순에 돌입하는 법정관리를 피하기 위해 정부 주도의 워크아웃을 선택한 것이다. 금융기관으로선 최대한 채권을 보전하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차선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실제 워크아웃 과정에서 각 금융기관별 유불리에 따라 불협화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사 과정에서부터 사업장 부실 정도와 회생 가능성을 두고 채권단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각 사업장별 대주단으로 참여한 금융기관마다 익스포져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정 금융기관이 태영건설에 직간접으로 묶여 있는 총채권을 1조원이라고 가정할 때 실제 익스포져가 얼마인지는 개별 사업장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사업성이 좋아 지속 가능하거나 매각 및 시공사 변경 등으로 충분히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장에 투자했다면 손실은 최소화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A금융기관이 총 10개 사업장에 걸쳐 5000억원의 채권이 있다고 가정할 때 10개 사업장 모두 부실 사업장으로 정리 대상에 올랐다면 A금융사의 익스포져는 5000억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B금융기관이 10개 사업장에 걸쳐 1조원의 채권이 있다고 가정할 때 총 1000억원 규모 1개 사업장만 부실이 발생했다고 하면 B금융사 익스포져는 사실상 1000억원에 그친다.
두 경우를 비교할 때 A금융사의 총채권에 따른 의결권은 B금융사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익스포져 금액은 약 5배로 높다. 이에 채권단 총회 등에서 A금융사의 발언권과 요구사항 등이 B금융사에 비해 더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채권단 내에서 개별 금융사의 부실 정도 및 그에 따른 채권 회수 가능액을 산정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갈등도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채권 금융기관이 워크아웃 자체에는 동의했지만 개별 사업장 실사 과정에서 평가 방식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각 금융기관 내에서 사업부서별로도 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태영건설 부동사 PF 위기 진원지로 불리는 개발사업에 여러 금융기관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태영선설은 개발사업을 위해 여러 페이퍼컴퍼니(PFV)와 특수목적회사(SPC) 등과 공동 시행에 참여하거나 단순 시공사로 참여했다. PFV와 SPC는 설립 단계부터 시행사 및 여러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영건설도 출자해 지분을 확보해 사업의 결속력과 안정성을 높였다. 이러한 PFV는 수백개에 달한다.
PFV는 특정 사업장 단위로 설립돼 있다. 이에 따라 개별 사업장별로 채권 현항도 복잡하다. 우선 PFV에 직접 지분을 투자한 금융사들이 있다. 또 PFV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주단으로 참여한 금융사도 있다.
사업장이 수백개에 달하는 만큼 특정 금융사가 어느 사업장엔 대주단으로 또 어느 사업장엔 주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때 금융사 내에서 투자은행(IB)와 대기업, 리테일, 기관그룹 등 각 사업부서별로 참여한 형태도 다르다. 한 금융사 내에서 개별 현장 실사 결과에 따르 부서별 유불리도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산업은행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실사를 맡을 회계법인으로 삼일PwC와 EY한영을 사실상 내정했다. 이들 회계법인은 각각 태영건설 본사와 PF사업장을 맡아 조만간 본격적인 실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본사와 사업장 실사 주체가 다른 만큼 또 다른 의견 대립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각 회계법인마다 특정 사안을 두고 평가하는 방식에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회계법인간 시각 차이는 과거 기업 감사보고서 감사의견 제출에서도 드러났다. 이에 따른 회계법인간 소송이 발생하기도 했다.
여러 형태의 변수가 향후 개별 금융사 익스포져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각 사업장에 대한 실사 결과 채권단 결속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에 개별 금융사 마다 곧 시작될 사업장 실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