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온시스템이 공모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11월 3000억원 넘는 만기 도래 회사채를 현금으로 상환했는데 이번에는 공모 시장을 다시 찾기로 했다.
다만 회사를 둘러싼 여건이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AA급으로 여전히 우량한 신용등급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난해 12월 신용평가사로부터 '부정적' 등급 전망을 받았다. 그럼에도 현금 사정을 고려해 차환 발행을 결정했다.
◇지난해 만기채 현금 상환 후 공모시장 재등장 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한온시스템은 이달 말 최대 40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설 계획이다. NH투자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많은 기업이 연초효과를 기대하며 공모채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나 올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하 돌입을 예고하면서 회사채 발행 분위기가 더욱 나아졌다. AA급 신용도를 보유한 기업은 안정적 투자 심리를 바탕으로 앞다퉈 발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온시스템 역시 국내 3대 신용평가사 모두로부터 'AA-'급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등급 전망에 일부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한국기업평가는 기존 'AA-, 안정적'에서 'AA-, 부정적'으로 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자칫 A급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수준이다.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AA-, 안정적' 등급과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
눈에 띄는 건 한온시스템이 지난해 등급 전망이 조정되기 전에 만기채를 현금으로 갚았다는 점이다. 한온시스템은 매년 공모채 시장을 찾는 정기 이슈어(Issuer)다. 2016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모채를 발행했다. 정기 이슈어인 만큼 지난해에도 9월과 11월 각 1400억원, 3200억원의 공모채 만기가 돌아왔다.
차환 발행이 유력해 보였지만 지난해 공모채로 조달한 돈은 다른 데 쓰였다. 한온시스템은 작년 4월 3000억원 규모 공모채를 찍었다. 최근 전기차 열관리 부품 사업 확대를 위해 CAPEX(자본적 지출) 투자에 한창인데 3000억원을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에서 열관리 부품 생산기지 건설에 전액 투입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과 11월 공모채 만기가 다가왔을 때는 보유 현금을 활용해 갚았다. 재차 공모채를 찍기보다 자체 자금을 쓰는 방식을 택했다. 지난해 3분기 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791억원이었다. 9월 공모채 상환 탓인지 상반기 말 1조4291억원에 비해 현금이 줄었다.
한온시스템은 '부정적' 전망을 달았지만 조달 시기에 대한 우려는 없다고 분석한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기평가 이후 등급 전망에 변화가 생겼지만 하반기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고 해도 수시평가로 인해 유사한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하반기에는 자체 자금으로 만기채를 상환했지만 현금 사정을 고려해 공모채 발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포드, 전기차 부품 판매 확대 '관건' 결국 기관투자자를 설득하는 핵심 요인은 '부정적' 꼬리표를 뛰어넘는 미래 실적 기대감이 될 전망이다. 한국기업평가가 등급 전망을 조정한 이유는 차입 부담 증가 때문이다.
한온시스템은 2019년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의 유압제어 사업부를 12억달러(약 1조3500억원)을 들여 인수한 뒤 차입금이 크게 늘었다. 이후 전동화 관련 설비투자가 이어지면서 지속적으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말 연결 기준 6417억원이던 순차입금은 2019년 말 2조348억원으로 늘더니 지난해 3분기 말 3조3956억원까지 증가했다.
지난해 공모채 발행 때 자금 사용 목적을 통해 강조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나라와 북미 지역에서 전기차 열관리 부품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내연기관차에선 크게 주목 받지 못한 부품이지만 전기차에선 배터리 쿨링 시스템과 히트펌프 시스템 등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다만 이로 인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CAPEX가 6000억원을 상회했다.
다만 앞으로는 CAPEX 규모가 줄어들고 새로 지은 설비에서 부품을 판매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점을 투자자에 강조할 계획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지난해 한온시스템의 CAPEX는 약 4500억원을 기록했다. 2025년까지 미국 테네시 공장과 캐나다 온타리오 공장을 중심으로 한 지출이 예정돼 있는데 향후 2년 간 CAPEX도 3500억원 수준으로 점쳐진다.
한온시스템 관계자는 "2025년 하반기부터 현대기아차와 포드를 중심으로 전기차 열관리 부품 판매 확대가 예상된다"며 "현 시점에선 투자 부담이 크지만 2년 뒤부터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으로 전환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