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와 한국투자금융지주 등 금융 지주사가 계열사 자금 투입에 힘을 쏟고 있다. 하나캐피탈과 하나에프앤아이, 한국투자캐피탈 등 계열 출자에 나선 구체적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조달 비용이 점증하는 시대에 재원 확충을 뒷받침한다는 큰 흐름은 동일하다.
시중은행을 보유한 하나금융지주의 신용등급은 정부 지원 가능성을 토대로 'AAA'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중레버리지비율이 점차 높아지는 건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증권사가 캐시카우인 한국투자금융지주(AA-)의 경우 출자 릴레이가 이어지면 레이팅 하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나금융 3500억 출자, 매년 1조 규모…정부 지원 가능성, 신용도 뒷받침 하나금융지주는 지난달 말 자회사인 하나캐피탈과 하나에프앤아이에 대한 주주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공시했다. 두 계열사에 대한 유증 규모는 각각 2000억원, 1499억원이다. 납입예정일은 하나캐피탈이 이달 27일, 하나에프앤아이가 내달 28일이다.
하나캐피탈은 근래 들어 오토금융과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자산 볼륨을 빠르게 키워왔다. 그만큼 레버리지배율이 상승했다. 이번 유증은 현금 확충에 따라 자본적정성 지표를 개선하는 동시에 자산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캐피탈 산업을 둘러싼 비즈니스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신용도 하락에 대비한 선제 조치인 셈이다.
하나에프앤아이의 경우 1500억원 수준의 유증은 자기자본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역시 영업 확대 전략에 따라 높아진 레버리지배율이 낮출 수 있는 기회다. 자본적성성이 개선되는 정도가 큰 이벤트인 만큼 신용평가사가 책정하는 신용도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하나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비은행 계열의 영업 능력과 손실 흡수 여력을 확대하는 출자 카드가 달갑지 않다. 물론 시중은행을 쥐고 있는 금융그룹으로서 3500억원 수준의 단발성 출자가 당장 크레딧 리스크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이다. 하지만 이들 계열사에 대한 지원 사격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게 문제다. 증권, 할부금융, 보험 등 비은행 사업의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1조원 수준의 현금 투입을 단행했다.
금융지주사의 신용도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는 이중레버리지비율이다. 자회사 출자총액(장부가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이 비율이 100%를 넘으면 결과적으로 부채를 통해 자회사 출자가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 현행 금융감독원 지도비율은 130%다. 하나금융지주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유증 완료시 126.9%로 상승한다. 업권 평균인 114%을 넘어 당국 권고치에 다가설 전망이다.
◇은행 계열 없는 한국투자금융지주…잇딴 자금 지원, 레이팅 액션 우려감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하나금융지주보다 계열사 출자에 따른 리스크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핵심 계열인 한국투자증권은 시중은행처럼 정부 지원 가능성이 신용도에 반영될 정도로 확실시된 금융사가 아니다. 자체 펀더멘털의 변화에 따라 신용등급과 아웃룩이 곧바로 흔들릴 여지가 있는 셈이다.
지난달 말 한국투자금융지주도 한국투자캐피탈에 대한 80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납입 절차도 일단락됐다. 한국투자캐피탈은 유증으로 확보한 자금을 토스뱅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용도로 쓸 계획이다. 이 계열사 입장에서는 유증 자금이 그대로 토스뱅크로 빠져나가는 만큼 부채상환능력에 변화가 없는 이벤트다.
그러나 한국투자금융지주의 경우 유증 뒤 이중레버리지비율이 128.7%로 상승할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금융 당국의 권고치보다 낮은 수치이지만 이제 추가 출자를 계속 검토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수준으로 올라선다.
이 금융지주사는 2016년 이후 주요 자회사를 상대로 자금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관계기업과 종속기업 투자자산은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캐피탈 등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났다.
한국투자캐피탈에 대한 지급보증 한도(2조6000억원)와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계열에 대한 상환우선주, 대여금 등을 고려할 때 전체 계열 지원 규모는 4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확보한 신용도의 실질적 기반은 한국투자증권이다. 하지만 증권 비즈니스의 특성상 매년 실적 부침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역으로 보면 이런 강도높은 사업 다각화가 부메랑으로 돌아와 운영 자금 확보를 위한 지속적 자금 투입으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