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만3200원으로 시작한 SK케미칼 주가는 연초 일시적인 상승 흐름에 힘입어 8만원대까지 올랐다가 이후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렸다. 시장에서의 주식 거래량 역시 평균 6만5000주 정도로 약 1000만주의 유통주식수에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장의 관심도를 의미하는 주식 거래량이 저조한 편에 속했으나 일시적으로 관심을 단번에 받은 시기가 있었다. 지난 7월 SK케미칼이 다국적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당뇨병 복합제 위탁생산·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당시 2만~3만주 수준이던 거래량은 132만주까지 치솟았다. 국산 신약 1호를 개발한 SK케미칼의 제약사업이 여전히 시장의 주목을 이끌 요인이라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그럼에도 SK케미칼은 최근 제약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미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과 혈액제제(SK플라즈마) 사업을 분사한 상황에서 제약사업을 매각하고 미래 경쟁력이 있는 분야로 사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과거 바이오 사업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SK케미칼의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도 이들 계열사 곳곳에 뿌려진 상태다.
◇신약에 눈돌린 섬유회사, 바이오 기틀 닦다 SK케미칼은 선경합섬 시절이던 1987년 삼신제약을 인수하며 제약사업에 첫발을 디뎠다. 직물 및 섬유 원사 중심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려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유공 인수를 통해 섬유의 수직계열화에 성공했고 나아가 섬유 산업 정체기를 돌파할 묘수로 제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체적인 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개발(R&D) 역량을 강화했고 1991년 은행잎 혈액순환개선제(기넥신F)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국내 최초의 항암 신약 '선플라(1999년)', 천연물 신약 1호인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2001년)' 등을 선보이며 제약 사업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2001년에는 동신제약을 인수해 지금의 백신과 혈액제 사업으로 키워냈다.
SK그룹 바이오 사업의 시작점으로 평가받는 SK케미칼이지만 2015년 혈액제 사업(SK플라즈마)을 분사하고 2018년에는 백신 사업부문(SK바이오사이언스)까지 분사하며 제약 사업의 힘이 빠졌다. 당시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던 혈액제 사업과 백신 사업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SK케미칼 제약사업은 조인스와 기넥신F 등 과거 개발한 제품에 의존하는 구조가 됐다.
물론 SK케미칼이 자체적인 신약 개발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백신사업 분사 다음해인 2019년에 SK케미칼은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업체와의 협력범위를 확대하기로 했고 이를 위한 별도의 오픈 R&D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난해에는 이 조직을 팀단위인 오픈이노베이션팀으로 확대 개편해 △신약개발 △인공지능(AI) △투자·파트너십 등의 임무를 강화했다. 신약 개발 과정에 AI를 접목해 전통적인 R&D 방식에서 탈피하겠다는 목적이었다. SK케미칼은 신약 개발 벤처회사 3곳에 투자를 집행하고 AI 기술 업체와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는 등 R&D에서만큼은 새로운 시도를 이어갔고 2025년부터는 오픈이노베이션 신약 과제를 기반으로 한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계열사로 퍼진 오픈이노베이션 전략, 초기 협업 관계 구축 현재 SK케미칼은 제약사업 매각을 추진하며 대표이사 주관의 임직원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직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아직 실사 단계로 어느 범위까지 매각이 성사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기존에 맺은 파트너십이나 투자 등도 이관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제약사업 매각 절차가 진행되고 있긴 하나 SK케미칼이 쌓아 온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은 다른 계열사들로도 이식된 상태다. SK케미칼이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세우고 신약 개발 벤처 회사에 투자를 개시한 2021년, SK바이오사이언스와 SK플라즈마 역시 각각 1곳의 벤처 회사에 투자를 진행하며 외부와의 협업 기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들 바이오 3사가 진행했던 각각의 투자액수 자체는 크지 않지만 신규 파이프라인 확보가 중요한 제약·바이오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초기 투자자로 협업의 기반을 닦았다고 볼 수 있다. SK케미칼이 진행한 가장 큰 규모의 신약 벤처 투자는 스탠다임에 대한 30억원 출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