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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의 1년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 독보적 경쟁력 원천 강조

③[기술]언급 강도·빈도 이전과 달라져, 세계 1등의 고민 결과물…R&D투자·특허 역대 최대 경신 지속

김경태 기자  2023-10-10 15:40:14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10월 27일 부회장 직함을 떼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4대그룹 총수 중 가장 늦게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회장으로 올라선 이후로도 진행된 공판은 여전히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이었다. 이 회장은 리스크가 있는 상황에서도 틈날 때마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글로벌 행보로 사업을 챙겼다. 향후 삼성의 기조를 전망할 수 있는 언급들도 내놨다. 회장 취임후 1년은 '재판, 글로벌, 기술, M&A, 지배구조'의 5가지 키워드로 집약된다. 완성체 삼성을 향해가는 ‘프로토타입’일 수 있는 이재용 회장 체제 1년을 돌아보고 향후 삼성의 행보를 키워드를 통해 가늠해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1년 간 가장 힘줘 말한 단어로는 단연 '기술'이 꼽힌다. 그는 과거부터 기술 경쟁력을 언급했지만 지난해부터는 그 표현의 강도가 훨씬 강해졌다. 이 회장은 "세상에 없는 기술을 만들자"라는 언급도 수차례 했다.

이에 관해 일각에서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왔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최근의 상황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이 회장의 기술 강조는 삼성전자라는 기술기업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당연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그가 회장으로 취임한 뒤 삼성전자의 연구개발(R&D) 비용과 특허 보유는 역대 최대를 경신하고 있다.

◇'기술 중요성' 수차례 언급, 리딩 컴퍼니의 '당연한 고민'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창업하던 당시의 삼성은 개발도상국 기업이었다. 당시 삼성은 자체적인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주력 분야에서 선진국 기업들과 기술 제휴를 매고 합작사를 세웠다. 또 글로벌 기업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는 현대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집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한 삼성전자의 노력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오랜 기간 삼성전자의 고위 경영진을 지냈던 한 경영자는 기자와 만나 "삼성전자 사업 초기에는 일본 등 선진국 기업 연구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저녁에 술자리를 만들어 중요한 얘기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런 선대 경영자, 임직원의 분투로 지금의 삼성전자의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시기에는 패스트팔로워 전략을 통해 글로벌 최정상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 회장으로서는 이전과는 달리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을 이끄는 과제가 있다. 따라갈 경쟁자가 많지 않은, 이전보다 자체적인 기술력의 중요성이 더 커진 상황인 셈이다.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그의 입에서 '기술'은 심심치않게 나왔는데 지난 1년에는 빈도와 발언의 강도가 이전과 달랐다.

이 회장은 작년 6월 12일간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며 기자들과 만나 "시장의 혼동과 불확실성이 많은데 우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 오고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그다음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다"라고 말했다.

작년 8월 15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을 받은 이후로도 기술을 언급했다. 같은 달 19일 경기 용인 소재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해 "기술 중시, 선행 투자의 전통을 이어 나가자"며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회장 취임일(10월27일)을 앞두고 고 이건희 선대회장 2주기(10월25일)에 계열사 사장단과 오찬을 하면서도 기술을 말했다. 그는 크게 5가지를 주문했는데 △세상을 바꿀 인재 양성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 △창의적 조직문화 △사회와 더불어 성장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다.

올 들어서도 그의 기술 강조는 계속됐다. 올 9월 1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코닝의 한국 투자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코닝의 우정어린 협력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든든한 디딤돌이 됐다"며 "우리 삼성과 코닝은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기술,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기술, 그리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2022년 8월 19일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이재용 회장(당시 부회장, 왼쪽에서 두번째). 사진 왼쪽부터 정은승 DS부문 CTO, 이재용 부회장, 경계현 DS부문장, 진교영 삼성종합기술원장

◇뜬구름 아닌 미래 잡을 보검, 숫자가 보여주는 '기술 경영'

이 회장이 '기술 경영'을 말한 뒤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뜬구름을 잡는다"라는 우려까지도 나왔다. 제대로 된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하는 언급이라는 지적이었다.

최근의 여러 상황은 이런 시선에 힘을 싣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업황 침체로 인한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 TSMC 등 경쟁사들이 실적·기술적으로 약진하고 있다. 특히 국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High Bandwidth Memory)에서 밀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그룹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점도 부정적인 시선에 한몫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는 기술기업이다. 이 회장의 발언은 기술기업의 수장으로서 업의 본질을 되새기면서 근원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당연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더군다나 특별 사면으로 사법 리스크를 일부 해소하고 회장 취임으로 명실상부하게 그룹을 이끌게 되면서 앞으로 계속될 이 회장 체제 삼성의 중심 기조를 선언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기술 중심 경영에 대한 지적은 단기적인 속성에만 집중한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마케팅 강화나 외부 기업에 대한 지분 투자, 인수합병(M&A), 합작사 설립은 상대적으로 빠른 효과 발생이 가능하다. 반면 자체 기술 개발은 장기전을 위한 채비로 즉각적인 성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난센스다.


실제 글로벌 IT기업들은 활용할 기술 개발에 관해 계층을 나눠 관리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안에 상품에 적용할 기술, 이보다 훨씬 미래에 활용할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삼성전자 역시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 조직을 3계층으로 운영한다. 우선 각 부문 산하 사업부 개발팀은 향후 1~2년 내에 시장에 선보일 상품화 기술을 개발한다. 각 부문 연구소는 3~5년 후의 미래 유망 중장기 기술을 만든다. 삼성종합기술원(SAIT)은 미래 성장엔진에 필요한 핵심 요소 기술을 선행 개발한다.

이 회장이 공언한 기술 경영이 실체적인 힘을 갖춰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해 얼마나 착실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사용된 '돈'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R&D비용은 2013년말 14조3194억원이다. 이 회장이 실질적으로 삼성전자를 이끌기 시작한 뒤 증가세를 기록했다. 2019년말 20조원을 넘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늘었다. 이 회장이 기술을 강조한 작년에는 24조9192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올 상반기에도 증가세를 이어갔다. 13조777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1% 늘었다. 올해도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매출에서 R&D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1.1%에 달했다. 전년 동기보다 3.2%포인트(p) 높아졌다.

기술 확보에 관해 비교적 '단기 결과물 지표'로 볼 수 있는 특허 건수도 증가세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특허는 2021년말 21만6404건으로 20만건을 넘었다. 그 후 작년말에는 22만5910건으로 늘었다. 올 상반기말에도 8246건의 특허를 획득, 23만4156건을 나타냈다. 작년 말과 비교해 3.7%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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