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제약사들은 '제네릭·상품유통·리베이트'라는 틀 안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약가규제, 불공정 관행 철퇴 등 과거와는 다른 규제환경에서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더해 오너십이 바뀌는 과도기까지 겹치면서 가지각색 '생존전략'이 등장했다. '위기냐 성장이냐'를 놓고 각각 다른 전략을 펼치는 제약사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광동제약은 투트랙으로 의약품 R&D를 진행 중이다. 여기서 광동 제약사업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어떤 물질을 개발 중이고 어떤 약을 허가받는지에 따라 제약사업의 향방이 갈린다.
광동제약의 의약품 R&D는 의약연구개발본부와 천연물의약R&D부문에서 각각 진행된다. 천연물의약R&D부문은 다양한 천연물 기능을 탐색해 기초 연구를 실시하고 혁신 의약품을 개발한다. 의약연구개발본부는 약물전달시스템(DDS) 기반으로 개량신약과 퍼스트 제네릭 개발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의약연구개발본부가 비교적 짧은 호흡으로 전략의 묘를 발휘한다면, 천연물의약R&D부문은 긴 호흡으로 유망한 물질 발굴과 개발로 신약개발역량을 실현한다 볼 수 있다.
◇퍼스트 제네릭 관건은 특허회피전략…맥 못추는 광동제약
의약연구개발본부가 지향하는 개량신약·퍼스트 제네릭은 속도가 관건이다. 블록버스터 오리지널 제품은 특허만료가 다가오면 수십곳의 제약사가 제네릭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이다. 일례로 광동제약이 지난해 허가받은 다파글리플로진 성분은 지난 4월에만 62개 회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제네릭을 출시해 과열 경쟁이 일었다. 이 중 유의미한 매출을 낸 회사는 한미약품, 종근당, 보령 등 5곳에 불과했다.
특허회피 전략은 퍼스트 제네릭과 개량신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최초 허가신청·심판청구 등 요건을 충족해 '우선판매권'을 얻거나 일부 성분이나 제형을 변경해 개량신약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 영업 규제가 점차 까다로워지는 의약품 판매 시장에서 '남들보다 일찍 출시할 권한'이 미치는 파급력은 상당하다.
최근 3년간 광동제약이 허가받은 제품 중 특허회피 전략이 유효했다고 볼 수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광동엠파글로·광동메포시타·다프로디 등 4개 당뇨병 치료제는 이미 다른 국내사들이 점령했거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장으로 광동제약이 시장을 확보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실제 최근 3년간 허가받은 당뇨병 치료제 중 유비스트에 처방실적이 잡힌 제품은 다프로디가 유일했다. 이마저도 분기 처방액이 4300만원에 그쳤다.
울리프리스탈 성분의 응급피임약 제네릭이 틈새시장을 노렸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지엘파마의 작품이다. 광동제약은 특허회피에 성공한 지엘파마에 생산을 맡기는 수탁사 역할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광동제약의 특허전략이 돋보인 제품은 유방암 치료제 '입랜스' 제네릭이다. 광동제약은 최초 허가신청과 특허심판 청구를 제기했고 2심에서 화이자에 승소해 우선판매품목허가권을 얻었다. 입랜스는 연매출 930억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치료제다. 우선판매품목허가권 획득으로 광동제약은 9개월간 독점으로 제네릭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광동제약이 입랜스 제네릭으로 매출을 벌어들이려면 3년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특허 만료로 제네릭을 출시할 수 있는 시기가 2027년 3월이기 때문이다. 당장 광동제약이 전문의약품 부문에서 실적을 기대할 만한 신제품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도입신약으로 틈새 노리는 광동, 시장성은 물음표
도입 신약에서는 틈새시장을 찾고 있다. 광동제약은 해외에서 개발된 신약을 국내 도입하는데 적극적인 편이다.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허가를 받아 신뢰도가 높고 국내 미충족 수요가 있지만 한국 직접진출이 힘든 제약사를 주로 컨택한다. 직접 신약을 개발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안이라 판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광동제약은 2017년과 2018년 미국과 캐나다 제약사로부터 두 건의 신약을 도입했다. 그 중 상업화가 가시화된 제품은 미국 제약사로부터 들여온 여성 성욕장애 치료제 '바이리시'다. 일명 '여성용 비아그라'로 불린다.
광동제약은 2019년 10월 바이리시 가교시험을 신청한 뒤 지난 5월 임상을 완료했다. 가교시험은 해외에서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실시해 개발된 신약을 국내 도입할 때 거치는 절차다. 인종이 다른 한국인에게 신약을 썼을 때 유효성·안전성에 차이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당초 작년 2월 종료가 예상됐던 가교시험은 코로나19 등 영향으로 1년 넘게 지연됐다.
올해는 무려 4건의 신약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홍콩 제약사로부터 소아근시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국내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이어 이탈리아 제약사로부터는 희귀질환 치료제 3종(락손·엘파브리오·람제데)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눈여겨 볼 점은 광동제약이 도입을 결정한 신약들은 모두 희귀치료제이거나 아예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그간 광동제약이 주력해 온 항암제·백신과도 거리가 멀다.
가까운 시일 내 상용화가 예상되는 바이리시의 경우 그간 치료제가 없었다. 바이리시가 허가를 받으면 처음으로 여성 성욕장애 시장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바이리시 시장성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배경이다. 남성 성기능장애 치료제로 돌풍을 일으킨 비아그라와 달리 바이리시는 성욕이 저하된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비급여라는 비용 부담과 부작용 염려, 자가주사펜에 대한 거부감, 성욕감퇴치료에 대한 낮은 인지도 등 넘어야 할 허들이 높다. 충분한 시장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으리란 분석이다.
이탈리아 제약사에서 도입한 치료제 중 락손은 레베르시신경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치료한다. 이는 심각한 시력소실을 유발하는 병이다. 엘파브리오는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유전희귀질환 파브리병을 타깃하며, 람제데는 알파-만노사이드 축적증이라는 희귀질환 치료에 쓰인다.
중증 희귀질환은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될 수 있지만 질환의 특성상 환자 수가 매우 적다. 애초에 진단 자체도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 때문에 희귀질환은 질환 인지도 개선부터 진단 환경 개선, 환우회·의료진 간 밀접한 교류가 동반되어야 한다. 희귀질환에 처음 도전하는 광동제약이 이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지 지켜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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