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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본부장의 묘수, 차입구조 '대전환'

장기차입금 '4400%' 급증…불황 속 대규모 투자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이호준 기자  2023-08-25 16:53:16
석유화학 업계의 기나긴 불황에서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 대응법을 가늠할 수 있는 힌트가 최근 SK케미칼 조달 전략에서 엿보였다.

SK케미칼은 올 상반기 장기차입금이 전년 대비 '4400%' 급증했다. 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등으로 차입구조를 장기로 전환한 재무 정책이 주효했다. 현금흐름이 둔화한 상황이지만 앞으로 이어질 대규모 투자엔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장·단기차입금 비중 역전…유동성 관리 제고 효과

SK케미칼의 올 상반기 말 연결기준 총차입금은 약 9644억원이다. 부채비율이 52%로 재무 부담은 아직 없지만, 총차입금 자체만 보면 전년 대비 62% 급증했다.

실탄을 외부에서 쌓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회사는 재생 플라스틱 등 '그린소재' 분야의 2030년 목표 매출로 2조6000억원을 꺼냈다. 이에 '약 1조원'을 설비 투자에 쓰겠다고 했는데 업계 불황으로 회사의 영업현금흐름은 상반기 내내 마이너스(-)였다.

다행스러운 건 똑똑한 '조달 전략'이다. SK케미칼의 부채 중에서 만기가 1년 이상인 장기차입금은 약 3222억원으로 전년 동기(71억원)에 비해 4400% 증가했다. 이에 반해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차입금은 2878억원으로 같은 기간 35%가 감소한 상태다.

연결기준, 단위: 백만원, 출처: 다트

갚을 기간이 도래한 회사채는 상환하는 대신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장기차입의 비중을 늘려 놓은 셈이다. 실제로 불과 1년 전만 해도 사채를 포함한 SK케미칼의 단기차입금과 장기차입금은 비중은 '82대18'이었다. 그러나 이 비중은 '49대51'로 역전됐다.

장기차입금은 통상 '양질의 빚'으로 불린다. 상환 기간에 여유가 있어 유동성 관리와 차입구조 안정성을 제고하는 데 큰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당분간 '돈 들어오는 일'도 적은 SK케미칼 입장에선 이어질 대규모 투자에도 제때 대응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그룹 내 '재무통'…추가 차입여력도 남아 있어

기본적으로 이러한 조달 전략을 구성하는 건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이다. SK케미칼의 경우 김기동 경영지원본부장 겸 재무지원실장이 키를 쥐고 있다.

김 본부장은 그룹 내에서도 '재무통'이란 인식이 강하다.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에서 3년간 재무실장을 역임하며 최창원 회장의 신뢰를 샀다. 지난해부턴 SK디스커버리의 신용도를 좌우할 만큼 비중이 큰 SK케미칼의 재무를 이끌고 있다.

김 본부장이 올해 장기 차입금 위주의 전략을 선택한 이유는 단기유동성 해결에 최대한 집중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중장기 재무 안정성을 담보로 내거는 대신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에서 최대한 투자 기한을 맞추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THE CFO

물론 장기화된 차입구조 없이도 SK케미칼 유동성 자체에 아직 심각한 문제는 없다. 회사의 올 상반기 말 연결기준 현금성자산은 1조5200억원에 달한다. 총차입금이 1년 간 62% 급증했지만 들고 있는 현금만으로도 여전히 빚을 갚기에 충분한 순현금 상태다.

양호한 재무구조도 김 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 SK케미칼의 부채비율(52%)은 탄탄하고 차입금의존도 역시 24%로 아직 추가 차입여력이 남아 있다. 고부가 제품인 코폴리에스터 중심의 판매 전략으로 연말 이후엔 실적 개선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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