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금융감독원은 기업들이 매분기 작성해 공시하는 감사보고서에 핵심감사사항(Key Audit Matter, KAM)을 기술하도록 '핵심감사제도'를 도입했다. KAM은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중점적으로 검토한 사안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꼼꼼히 봐야 할 재무 정보가 무엇인지 KAM을 통해 알 수 있다. 2020년 코넥스를 제외한 전체 상장사로 핵심감사제도가 확산됐지만 여전히 관심 밖에 있다. THE CFO가 각 기업별 KAM과 선정 배경을 살펴본다.
현재 양극재를 포함한 이차전지 소재 기업으로 시장의 관심이 넓어졌지만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이차전지 제조 기업의 위상을 넘볼 정도는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 상위 5개 종목(우선주 제외) 중 2개가 이차전지 제조 기업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아직 SK온은 비상장 상태다.
3개 기업의 실적과 재무상태, 현금흐름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공시 자료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졌다. 이에 따라 기업이 정확하게 '숫자'를 측정했는지 외부에서 검토하는 감사인(회계법인)들의 어깨도 무거워졌다. 본인들이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부정확한 숫자가 공시되면 투자자들의 판단력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최근 3년 감사인들이 특히 집중 검토한 숫자들은 무엇일까.
◇LG엔솔 감사 키워드 '합의금 1조'와 '리콜 비용'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LG화학에서 물적분할됐다. 상장은 이로부터 13개월 뒤인 2022년 1월에 했다. 하지만 물적분할했을 때부터 자산총계가 외부 감사 기준인 훌쩍 뛰어넘으면서 감사보고서를 제출했다.
2020년과 2021년 각각 감사인이었던 삼일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은 핵심감사사항(KAM)을 선정하지 않았다. 다만 한영회계법인은 2021년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받은 1조원의 합의금(전기차용 이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영업수익으로 분류한 점에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일회성 영업수익으로 매출액이 1조원 늘어난 점을 감안해 LG엔솔의 성장성을 판단하라고 꼬집은 셈이다.
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비와관리비를 차감해 구하는 영업이익도 매출액에 1조원을 포함한 효과를 봤다. 2021년 LG엔솔 영업이익은 7684억원으로 전년 대비 흑자 전환했다. 만약 1조원을 영업수익이 아닌 영업외수익으로 분류했다면 2020년에 이어 2년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리에 감사인인 한영회계법인이 의구심을 갖지는 않았다. LG엔솔 실적을 이해할 때 유의하라고만 강조했다.
2022년에 이르러서야 KAM이 선정된다. 감사인인 안진회계법인은 LG엔솔이 측정한 'GM 리콜 충당부채'가 정확한지 면밀히 검토했다. 2021년 GM은 LG엔솔 배터리가 탑재된 '볼트 EV'에서 화재 사고들이 발생하자 리콜을 결정했고 LG엔솔은 리콜 비용 일부를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관련 비용은 회계상 '판매보증충당부채'로 분류됐다.
충당부채는 당사자인 기업뿐 아니라 투자자도 꺼리는 일회성 비용이다. 대부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충당부채를 쌓지만 기업의 부족함 때문에 쌓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부 기업은 사고 여파가 크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충당부채를 최대한 적게 쌓으려고 한다. 안진회계법인이 KAM으로 'GM 리콜 충당부채'를 꼽은 이유로 풀이된다.
안진회계법인 측은 "2022년 말 현재 LG엔솔이 (GM 리콜에 대해) 계상하고 있는 충당부채 규모는 2652억원"이라며 "충당부채 추정시 경영진 판단이 수반되는 점을 고려해 해당 항목을 핵심감사항목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LG엔솔 충당부채 규모를 연도별로 비교하면 2021년에 GM에 리콜 비용을 지급하기 위한 충당부채를 쌓은 뒤 이듬해 일부 지급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SDI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 진짜야?
경쟁사들과 비교했을 때 삼성SDI 감사 결과에서 눈에 띄게 다른 점은 감사인이 지속해서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을 KAM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은 회사가 밝힌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매출)이 실재하는지 계속해서 감사했다.
삼성SDI는 기본적으로 고객사 요청으로 만든 전기차용 배터리를 포함한 재화를 고객사가 인수했을 때 대금 청구서를 발행하고 수익으로 인식한다. 고객사가 재화를 인수하기 이전 단계에선 신뢰성 높은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수익으로는 인식하지 않는다. 단 삼정회계법인은 이러한 수익 인식 절차보다는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의 변동성이 커진 점을 예의주시했다.
삼정회계법인에서 삼성SDI 감사를 책임진 회계사는 "정보 이용자 입장에서 봤을 때 변동성이 큰 부분에 대해선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전기차용인 중형 배터리 수익의 변동성이 컸기 때문에 그 부분을 살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동일 업종이더라도 핵심감사사항을 판단하는 기준은 감사인마다 다르다"고 덧붙였다.
현재 사업보고서와 IR자료로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만 따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기차용 배터리 수익이 포함된 '에너지및기타' 사업 부문 매출은 지난해 17조5663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간 매출도 증가했지만 매출 증가율도 상승했다. 반면 다른 사업 부문인 '전자재료' 매출은 최근 3년간 2조5000억원을 기준으로 오르내렸다.
◇조달 이슈 있지만 '회계 이슈'는 없는 SK온
유일한 비상장사인 SK온은 어떨까. 2021년 10월 설립된 SK온은 LG에너지솔루션과 마찬가지로 설립 당시부터 외부 감사 대상이었다. 이때부터 감사인은 한영회계법인이 맡고 있다.
한영회계법인은 2021년, 2022년에도 KAM을 선정하지 않았다. 따로 강조한 사항도 없다. 회계법인 측은 "재무 성과와 현금흐름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라 공정하게 표시하고 있다"고 짤막하게 의견을 냈다. 지난해 말 SK온 충당부채는 212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75%(910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측정 절차와 금액 등을 집중 감사할 만한 요인은 없었다고 본 셈이다.
SK온은 최근 1년간 10조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등 투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업계가 '캐파(생산능력)'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경쟁은 자금 조달 능력으로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 LG엔솔처럼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 못한, 삼성SDI처럼 이미 현금 창출력이 우수한 사업을 보유하지도 못한 SK온이 자금 조달에 사활을 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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