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기업에 재고자산은 '딜레마'다. 다량의 재고는 현금을 묶기 때문에 고민스럽고, 소량의 재고는 미래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또 걱정스럽다. 이 딜레마는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공급망 불안정에 따른 원재료 확보의 필요성과 경기침체에 따른 제품 수요의 불확실성이 샌드위치 형태로 기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벨은 기업들의 재고자산이 재무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국내 첫 민간 정유회사로 시작한 GS칼텍스는 윤활유, 석유화학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정유사업의 변동성을 보완했다. 이중 석유화학 사업은 1990년 파라자일렌으로 시작한 방향족(PX)을 핵심 제품군으로 두고 있다.
GS칼텍스는 2010년대 중반 PX 스프레드(제품가격과 원료가격의 차이)의 급등으로 방향족을 포함한 석유화학 부문에서 높은 수익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핵심 시장인 중국의 생산활동이 전면 중단되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하반기 공장 가동률을 극적으로 끌어내리며 재고 정리에 나섰던 GS칼텍스는 올해 초 정기보수 이후 서서히 가동률을 끌어올릴 예정이다. PX스프레드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점진적인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까지 겹치며 재고관리 부담에서 벗어나는 모습이다.
◇재고자산 2000억 육박, 가동률 조정으로 대응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는 최악의 시황 악화로 가동률 조정을 통해 재고자산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코로나19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며 석유화학 주요 제품의 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업황 악화를 경험해야 했다.
이에 GS칼텍스는 지난해 하반기 PX 가동률을 60%대까지 끌어내렸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PX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80% 후반, 90% 초반 수준을 유지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평균가동률이 92%였지만 3분기에는 62%까지 낮췄다. 4분기(67%)에도 역시 이와 비슷한 60%대의 가동률을 유지했다.
GS칼텍스가 PX 가동률을 극적으로 끌어내린 데에는 쌓이는 재고수량을 관리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말 GS칼텍스의 PX 재고자산 수치는 1910억원으로 2000억원대 수준에 육박했다. PX 재고자산이 2000억원대를 기록한 것은 2013년 말(2037억원)이 마지막이었다.
다만 당시만 해도 PX 시황이 호조를 보이기 시작할 때로 공장 가동률을 최대로 돌려도 재고량 조절이 가능했다. 실제로 이듬해인 2014년 PX 재고자산은 1284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이후 PX 스프레드가 톤당 500~600달러까지 치솟은 2019년까지 PX 재고자산 수치는 1300억원대 안에서 관리됐다.
통상 PX 산업의 손익분기점은 PX 스프레드 250달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PX스프레드는 100달러대까지 떨어졌고 GS칼텍스는 당시에도 가동률을 80%대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며 시황 변동에 대응했다.
지난해의 경우 2분기부터 PX스프레드가 손익분기점을 넘긴 300달러 수준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전의 시황 악화로 쌓여있던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하반기 가동률을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미착품, 재공품, 원재료 등 최종 제품 이전 단계의 재고자산 수치를 하향 조정했고 그 결과 지난해 상반기 2000억원에 육박하던 PX 재고자산은 그해말 1728억원까지 내려갔다.
◇정기보수 끝낸 PX, 기대되는 하반기
올해 1분기 PX 스프레드는 전년도 하반기와 비슷한 톤당 347달러로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이 시기 GS칼텍스의 PX 가동률은 55%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이는 매년 있는 석유화학 공장의 정기보수가 진행된 탓으로 회사는 올해 2분기부터 공장 가동률을 서서히 끌어올리는 중이다. 특히 중국 내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PX 스프레드가 점차 개선되는 흐름을 보이며 본격적인 수익성 회복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PX를 중심으로 한 GS칼텍스의 석유화학 사업은 과거 매출뿐 아니라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기존 정유사업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2010년대 중후반 PX 스프레드가 500달러 수준을 오가며 시황이 최호조를 보일 당시 석유화학 부문은 전체 영업이익(정유·윤활유·석유화학)의 20~30%를 담당하며 확실한 수익성을 보장했다.
2016년 5000억원까지 기록했던 석유화학 부문 영업이익은 코로나19 이후 수백억원대로 떨어졌고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한자릿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의 빈자리를 윤활유 부문이 대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PX 스프레드가 2021년 4분기 최저점(149달러)을 찍은 후 다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있고 여기에 중국 리오프닝까지 더해지면 석유화학 수익성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이미 올해 1분기 석유화학 부문은 작년 한해 영업이익 894억원의 40%에 해당하는 수익(348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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