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경영이 드물게 분리되는 국내에서 오너기업의 경영권은 왕권과 유사하게 대물림한다. 적통을 따지고 자격을 평가하며 종종 혈육간 분쟁을 피할 수 없다. 재계는 2022년 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승진과 함께 4대그룹이 모두 3세 체제로 접어들었다. 세대 교체의 끝물, 다음 막의 준비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주요기업 차기 경영권을 둘러싼 후계 구도를 THE CFO가 점검해 본다.
승계 문제에서 GS그룹은 범 LG가(家)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뿌리가 같은 LG그룹이 장자승계를 고집하는 것과 달리 허씨 일가는 '금녀(禁女)' 외에 뚜렷한 원칙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룹의 초대 수장인 허창수 GS건설 회장은 막냇동생 허태수 회장에게 총수 자리를 물려줬다.
장자 타이틀이 후계권을 보장하지 않으니 경영성과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GS그룹은 '홍(烘)'자 항렬이 이끌 4세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차기 대권을 점치긴 섣부르지만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윤홍 GS건설 사장, 허서홍 ㈜GS 부사장이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초기 선두 허준홍, 경로 이탈…삼양통상 대표로
올해 4월 기준으로 ㈜GS 지분을 가지고 있는 홍자 돌림 4세는 모두 15명이다. 이중 10명이 방계를 포함한 그룹 계열사, 또는 친족기업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분율을 보면 허준홍 삼양통상 사장이 가장 많은 3.01%(보통주 기준)를 보유했다.
허준홍 사장은 장자 계보로 따져도 제일 적통이다. 양부(養父) 허남각 회장이 고(故)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장남, 허정구 회장은 고(故) 허만정 GS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원래 허남각 회장의 조카였으나 아들이 없던 허남각 회장이 양자로 데려왔다. 입적에 따라 장손의 위치를 점한 만큼 허준홍 사장은 처음부터 강력한 후계자로 거론됐다. 당초 GS칼텍스에서 윤할유사업본부(부사장)를 맡아 두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2019년 말 허 사장은 돌연 사의를 표명하고 GS칼텍스를 떠났다. 이듬해 곧바로 삼양통상 대표이사로 취임한다. 삼양통상은 허 사장의 조부 허정구 회장이 설립한 피혁 제조업체다. GS그룹으로 분류되긴 하나 ㈜GS와 출자 관계는 없다. 사실상 독자 노선을 걷는 회사라고 볼 수 있다. 레이스 초반 치고 나갔던 허준홍 회장이 코스를 벗어난 셈이다.
허 사장의 이탈은 '허준구계'의 우세와도 맞물린다. 허만정 창업주는 슬하에 아들 여덟을 뒀는데, 이중 1남 허정구 회장, 3남인 고(故)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계열이 가문의 양대 축을 형성했다. 그러다 초대 총수인 허창수 회장, 현재 총수인 허태수 회장이 모두 허준구계에서 나오면서 무게추가 다소 기울게 됐다.
◇허세홍·허서홍, 막 오른 사촌경쟁
하지만 이런 형세가 계속될 것이라 장담하긴 일러 보인다. 엘앤에프 등 방계 계열사를 빼면 홍자 항렬에서 부사장급 이상은 3명 뿐이고, 이 가운데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허서홍 ㈜GS 부사장 등 2명이 허정구 가문에서 나왔다. 먼저 허세홍 사장은 허정구 회장의 차남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첫째 아들이다. 1969년생으로 4세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하다.
허세홍 사장은 2016년 아버지 허동수 회장이 GS칼텍스를 떠남과 동시에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이듬해는 GS글로벌 대표이사를 맡아 최고경영자(CEO)로 데뷔, 2018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GS칼텍스 대표이사로 선임된 것은 2019년 1월이고 작년부턴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다. GS칼텍스가 GS그룹에서 가장 비중이 큰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허서홍 부사장의 경우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이다. 차남이었으나 형 허준홍 사장이 허남각 회장의 양자로 갔기 때문에 첫째가 됐다. 부친 허광수 회장이 허정구 회장의 삼남이니 허서홍 부사장과 허세홍 사장은 사촌 관계다.
1977년생인 허서홍 부사장은 GS그룹에 2006년 합류했다. GS홈쇼핑 신사업팀 대리, GS에너지를 거쳤고 ㈜GS로 이동한 것은 2020년이다. 4세 중 유일한 지주사 임원이며 현재 ㈜GS에서 미래사업팀을 이끌고 있다. 미래사업팀은 허태수 회장이 총수에 오른 뒤 꾸려진 조직이다. 그룹 수장으로서 허태수 회장의 중책이 성장동력 발굴로 평가되는 상황에서 허 부사장에게 키를 맡겼다. 사촌 형과 비교하면 지금은 허 사장이 '언더독(Underdog)'이지만 부상할 기회는 충분하다.
◇GS건설 허윤홍, 신사업 성과 두각
또 허준구계에서 부사장급 이상인 임원은 허윤홍 GS건설 사장이 있다. 전대 총수 허창수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윤홍 사장은 1979년생이라 허세홍 사장과는 꽤 나이 차이가 난다. 허서홍 부사장보다도 2살이 어리지만 그룹 경영에 참여한 것은 오히려 빨랐다.
2002년 GS칼텍스에 입사, 2005년부턴 쭉 GS건설에 있었다. 2020년 신사업부문 신설과 함께 신사업부문 대표 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말에는 신사업부문이 미래전략부문으로 개편되면서 CinO(Chief innovation Officer, 미래전략대표) 보직을 맡았다. 부문 매출이 2022년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는 중이다.
다만 GS건설이 그룹 내에서 독특한 위치라는 점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GS건설은 지분구조만 보면 그룹에서 독립된 상태와 다름없다. GS건설 최대주주인 허창수 회장이 ㈜GS 지분을 4.75% 가지고 있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지주사와 건설간 직접적 지분관계는 없다. 허윤홍 사장이 총수 자리 보다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허창수 회장은 그룹 총수 자리를 내려놓은 뒤에도 GS건설 회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부사장급 밑까지 임원 범위를 넓힐 경우 허정구계보다는 허준구계의 세가 강했다. 허철홍 GS엠비즈 대표(전무), 허치홍 GS리테일 상무, 허진홍 GS건설 상무, 허주홍 GS칼텍스 상무, 허태홍 GS퓨처스 대표(상무)가 모두 허준구 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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