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증권발 매도 폭탄에 휘말린 기업들은 대주주와 자사주 지분율이 높다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유통주식 수가 적을수록 소규모 매매만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기 쉽고, 투자자 관리에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삼천리 역시 8개 기업 중에선 투자자 소통에 열려 있지만 따로 IR행사를 하진 않는다. 주가가 지나치게 올랐다는 인식이 있었어도 경고할 기회가 충분치 않았다. 또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주가 상승이 맞물리다 보니 작전 세력을 의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천리는 매출에 크게 변화가 없는 편에 속한다. 2012년 이후 근 10년간 3조원대 연결 매출을 꾸준히 기록했다. 성장세가 눈에 띄는 기업은 아니지만 그만큼 안정적이다. 당연히 주가 등락폭도 크지 않았는데 지난해는 달랐다. 연초 8만5000원에서 연말 39만1000원으로 5배 가까이 올랐다. 올해는 주당 50만원 선을 돌파했다.
주당 10만원 후반대였던 작년 중순까지만 해도 상승세는 납득이 갈 만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서 삼천리가 '전쟁 테마주'로 꼽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2022년 삼천리는 연결 매출 5조7891억원을 기록, 역대 최고 외형을 달성했다. 순차입금이 2200억원 수준에 불과해 재무적으로도 탄탄했다.
하지만 2022년 하반기 주가가 20만원을 넘기기 시작하자 회사 내부에서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주가 관련 문의가 올 때마다 삼천리 측에서 "LNG 가격이 상승해도 상승분은 대부분 가스공사에 들어가고, 삼천리가 얻을 수 있는 마진에는 한계가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가스 소매요금은 도입단가와 연동돼서 결정되다 보니 천연가스 가격이 비싸져도 삼천리 등 소매업자 영업이익이 늘진 않는다.
시장도 우려를 공유하고 있었다. 지난해 5월 유진투자증권은 삼천리에 대한 투자의견을 '매수(BUY)'에서 '보유(HOLD)'로 하향, 11월엔 다시 '비중 축소(REDUCE)로 내려 잡았다. 사실상 팔라는 경고인데,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웬만해선 매수 의견을 내는 관행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당시 유진투자증권 황성현 연구원은 "견조한 도시가스 본업 실적, 미국과 유럽의 친환경 정책 확대, 수소사업 기대감이 부여되며 삼천리 밸류에이션이 같이 확장됐다"면서도 "도시가스 산업은 급격한 비즈니스 포트폴리오 변화보다는 터널 톨비를 회수하는 리츠와 같은 비즈니스고 가스배관이 수소사업에 활용될 여지는 있으나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적과 주가 모두 과거로 회귀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주가 과열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삼천리, 서울도시가스, 대성홀딩스 등 도시가스 관련주는 올해도 폭등세가 이어졌다. 올 초를 전후해 투자업계에선 투기성 자금 때문일 수 있다는 의심이 퍼지기도 했다. 치솟는 주가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관련 지표를 보면 삼천리는 작년 말 기준 PER(주당순이익비율) 32.19배, PBR(주당순자산가치) 0.95배를 기록했다. 피어(Peer)그룹으로 묶이는 경동도시가스와 비교해 보면 경동도시가스는 같은 기간 PBR 6.17배, PER 0.38배를 나타냈다. 단순히 시장 지위 차이로 이해하긴 무리가 있었다.
이상기온에 삼천리 측이 더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확신 부족 때문으로 짐작된다. 특별한 호재 없이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오르더라도 기업엔 이유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마땅치 않다.
기업 주식을 사고파는 주체에 대한 내역은 금융감독원에만 공개되고 회사는 알 수 없다. 주주총회 시기에 주주명부 변동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다만 의심이 될 경우 금감원에 신고를 하는 등의 조치는 취할 수 있다.
삼천리 관계자는 "주가가 그렇게까지 오를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봐서 투자를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언론 등에 전하긴 했다"며 "하지만 신고를 해야할 정도의 징후를 느끼진 못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상황인 것"이라고 말했다.
책임 소재와 별개로 삼천리는 기업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주가 관리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의 핵심 업무로 꼽히는 만큼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삼천리는 박무철 전 부사장이 경영지원본부장으로 2017년부터 CFO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올 초 회사를 떠났다. 이에 따라 박 전 부사장 휘하에서 경영지원본부 경영관리담당으로 있던 김태석 전무가 배턴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