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전략은 사업과 기업가치를 뒷받침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사업자금이 필요하면 적기에 조달을 해야 한다. 증자나 채권발행, 자산매각 등 방법도 다양하다. 현금이 넘쳐나면 운용이나 투자, 배당을 택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엔 결과물이 있다. 더벨이 천차만별인 기업들의 재무전략과 성과를 살펴본다.
여천NCC가 2000억원 규모로 자본을 확충했다. 주주들로부터 지원(유상증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보유자산의 숨겨진 가치를 찾아낸 결과다. 토지를 재평가해 잉여금을 만들어냈다. 감정평가를 받은 결과 매입가의 두 배로 가격이 뛰어있었고, 그만큼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업황악화로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있었는데 이번 비책이 상당한 완충역할을 했다.
◇여수 4개 공장 토지 재평가…5000억원대 달해
여천NCC는 국내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총 4개의 사업장을 갖추고 있는데 해당 공장이 위치한 토지도 보유하고 있다. 총 48만평(160만m²)에 이르는 대규모 부지다. 축구장 190개를 합쳐 놓은 크기다.
여천NCC는 그 동안엔 ‘원가모형’ 방식으로 해당 토지를 평가해 유형자산에 포함시켰다. 원가모형이란 말 그대로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만 반영한 가격을 장부가액으로 기재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시가(공정가치)로 계산하는 방식을 재평가모형이라고 한다. 2008년 기업회계기준서 개정으로 재평가모형을 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재평가모형은 전문적 자격이 있는 평가인(감정평가사)으로부터 감정가액을 산출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천NCC는 지난해 4분기부터 유형자산(토지)에 대한 회계정책을 원가모형에서 재평가모형으로 바꿨다. 그리고 재평가모형을 적용해 사업장 토지에 대해 감정가액을 산출 받은 날짜는 지난해 10월 31일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토지 장부가액은 2476억원이었지만 4분기말 기준으로 5481억원으로 2369억원 증가했다. 토지자산이 두 배 가량으로 늘어난 셈이다.
회계적으로 자산은 자본과 부채의 합산액이다. 자산이 늘어나면 자본이나 부채에 반영해야 한다. 유형자산을 재평가해 늘어난 금액은 대다수 자본항목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된다. 다만 미래에 유형자산을 매각할 경우 내야할 세금도 재평가된 만큼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이 예상 세금은 이연법인세로 처리해 부채에 반영하게 된다.
이에 토지 장부가액 증가분(2369억원) 중에서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된 금액(유형자산재평가잉여금)은 2015억원이다. 나머지(354억원)는 부채다. 토지 재평가로만 대규모 자본확충 효과를 봤다.
다만 단점도 있다. 재평가모형은 주기적으로 유형자산을 시가로 재평가해 늘어나거나 줄어든 금액을 기타포괄손익에 반영해야한다. 최소 3년에 한 번은 재평가해야하고 시세가 낮아질 경우 자본이 줄어들 위험이 있다.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카드라는 특징도 있다. 재무개선을 위해 원가모형에서 재평가모형으로 바꾸는 사례는 많아도 반대는 적다. 자본이 줄어드는 선택지인 탓이다.
◇3000억 순손실 상쇄, 부채비율 악화 최소화
토지 재평가 덕에 실적악화로 재무구조가 더 크게 훼손되는 걸 막았다는 평가다. 여천NCC는 지난해 당기순손실 3477억원을 기록했다. 자본총계 계정 중 하나인 이익잉여금이 그만큼 차감됐다. 유형자산재평가잉여금(2015억원)이 순손실(3477억원) 절반 이상을 상쇄해줬다.
그 결과 자본총계는 2021년 말 1조2511억원에서 2022년 말 1조1149억원으로 1362억원 줄어드는데 그쳤다. 부채비율은 같은 기간 181.3%에서 200.1%로 18.7%포인트 상승했다. 토지 재평가가 없었다면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240.3%로 치솟는다.
신용등급(A+)에 부정적 아웃룩이 붙은 상태라 최고재무책임자(CFO) 역할을 하는 원홍 재경팀장이 최선의 솔루션을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부정적 아웃룩은 시장성 조달을 어렵게 해 유동성 위험을 높게 하고 조달비용도 커지게 한다.
이번 자본확충은 비록 현금유입이 없는 회계적 변화지만 그럼에도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회계전문가는 “당장 현금 유입은 없었더라도 보유한 토지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입증한 것”이라며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자본보강을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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