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는 내수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해외로 전진하는 비전을 설정했다. 2030년까지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안에 드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분투 중이지만, IR(Investor Relations) 행보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사례가 '전망치(가이던스) 공개'다. 매출, 영업이익, 수주액에 한정해 알리는 데다 실적 예상값을 업데이트하는 일도 드물다.
'세계 1위 승강기 제조사' 오티스(OTIS)는 영업 성과에 국한하지 않고 주당순이익(EPS)과 잉여현금흐름(FCF) 예상 수준까지 제시한다. 실적과 전망이 지나치게 괴리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분기마다 가이던스를 수정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차입금 상환 목표액'도 발표하는 오티스글로벌 승강기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은 미국 회사인 오티스다. 2022년 오티스의 매출이 135억7900만달러(17조6120억원)로 동종업계에서 최대 규모다.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의 연결 기준 매출 2조1345억원과 견줘보면 8배 넘게 많은 금액이다.
오티스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업체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자 소통 강화' 트렌드에 보조를 맞췄다. 새해 경영 가이던스를 상세하게 나열하는 대목이 돋보인다. 영업부터 유동성, 주주 환원까지 폭넓은 분야의 지표 예상치를 반영했다.
2022년 4분기 실적 설명회 당시 배포한 자료집을 살피면 2023년 전망치로 △순수 매출(organic sales) 성장률 △고정환율 기준 조정 영업이익 △조정 영업이익률 △조정 주당순이익(EPS) 등을 제시했다. 특히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의 경우 신규 장비(New Equipment), 유지·보수 서비스 등 핵심 사업별로 나눠 제시했다.
재무 관련 지표도 가이던스의 범주에 포함했다. 차입금 상환 목표가 해당된다. 올해 가이던스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2022년에 오티스 경영진은 연간 최대 5억달러를 갚을 것이라는 계획을 공개했다.
배당 등 주주 환원에 필요한 재원의 예측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취지에서 잉여현금흐름(FCF) 전망 역시 제시해왔다. 오티스는 2023년 FCF가 적게는 15억달러(1조9584억원), 최대 15억5000만달러(2조237억원) 수준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년 자사주도 사들여 소각하는 만큼, 올해 자기주식 매입 계획 목표액을 최대 8억달러로 기술했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의 가이던스 공개는 제한적이다. 전체 매출액, 영업이익, 수주 금액 등 3대 지표의 전망치만 발표하는 데 그친다. 기업설명회(IR) 프레젠테이션 자료에 '주주 친화 정책' 항목이 존재하지만 미래 계획은 드러나지 않는다. 과거 배당 내역이나 자사주 소각, 무상증자 등 기존에 시행했던 조치의 결과만 언급됐다.
◇분기마다 전망 수정하는 오티스, 현대엘리베이터는 '한 차례' 그쳐오티스는 가이던스와 실제 지표상 오차가 발생할 여지를 줄이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건 전망치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상·하단 범위(range)로 나타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올해 엘리베이터 사업 부문의 매출 성장률을 '4~6%'로 제시하고, 조정 영업이익 예상 구간을 '1억3000만~1억7500만달러'로 설정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단일한 금액만 적시해왔다. 2023년 별도 기준 매출 가이던스로 1조8262억원을 공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숫자만 표기하다보니 그동안 전망과 실적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2017년 이래 지난해까지 매년 실적이 가이던스에 미달했다.
연초에 발표한 전망치를 활발하게 수정하는 움직임도 실적과 가이던스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노력과 맞물린다. 오티스는 분기마다 실적 예상값을 업데이트해 일반에 공개해왔다. 2022년에도 세 차례에 걸쳐 정정했다. 특히 같은 해 4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를 감안해 러시아 현지 사업을 제외한 채로 가이던스를 다시 산정했다.
처음에 오티스는 지난해 신규 장비 사업 부문의 매출이 최대 3%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다. 이후 업데이트를 거쳐 2.5%가량 매출이 줄어들 거라는 전망을 최종 도출했다. 신규 장비 사업의 실제 매출 성장률은 전년대비 -1.7%로 나타났다. 수시로 업데이트한 노력이 가이던스와 실적의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한 셈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가이던스를 정정 공시한 건 지금까지 한 차례에 불과하다. 2017년 8월로, 당시 물류 자동화 설비 사업부를 떼내 새로운 계열사 '현대무벡스'를 설립한 영향이 작용했다. 경영상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주기적으로 전망을 고치는 오티스와 대조적인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