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콜로 진행하는 기업설명회(IR)의 백미는 기업 관계자와 시장 관계자 사이에 오가는 질의응답(Q&A)이다. 투자자를 대변하는 시장의 관심이 무엇인지 드러나고 기업 입장에서 되도록 감추고 싶은 속살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자사 홈페이지에 IR 자료와 음성파일을 올릴 때 Q&A 부분만 제외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THE CFO가 IR의 백미 Q&A를 살펴본다.
KB금융그룹이 중장기 자본관리계획과 함께 주주환원책을 발표했다. 올해 정기 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KB그룹의 재무를 총괄하게 된 서영호 재무총괄 부사장(CFO)은 리스크 요인을 감안한 가운데 최대한의 주주환원정책을 내세웠다.
KB금융의 주주환원정책은 자산 성장 목표를 달성한 뒤 Target CET1(보통주자본) 비율 13%를 초과하는 자본을 주주환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골자다. 자사주를 지속적으로 매입하고 소각해 총주주환원율을 높여 나가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13%' 수준의 CET1 비율은 안정적인 재무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대부분 은행들이 타깃으로 하는 숫자다. KB금융은 막대한 순이익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담보하면서도 주주환원을 늘리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KB금융 컨퍼런스콜에선 부동산 및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의 정상화가 단골 질문으로 등장한다. 이번 컨퍼런스콜에선 부코핀은행의 정상화 시점을 2025년 이후로 못 박았다. KB금융은 이미 8000억원 가량을 부코핀 은행에 투자한 바 있다.
◇'1조원' 대손충당금 적립에도 '주주환원' 공약 주목
7일 개최된 KB금융그룹 '2022년 연간 경영실적' 컨콜에서 질의응답(Q&A)은 주주환원책과 관련된 질문으로 문을 열었다. 총 10개의 질문 중 5개가 주주환원책과 관련한 질의였다.
앞서 KB금융은 컨콜 당일 오전 이사회를 열어 총주주환원율을 33%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현금배당 26%와 약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포함돼 있다.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주환원과 관련해 배당과 자사주 밸런스를 어떻게 맞춰갈 계획인가"라며 "JP모간의 경우 목표했던 연간 이익의 3분의 1을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썼는데 KB그룹도 가능한 시나리오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또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인센티브로 활용하는 해외 사례를 들며 자사주 활용 계획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서영호 부사장은 "JP모간식 배당을 하려면 총자산순이익률(ROA)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며 "CET1 비율 13%를 우선 달성하고 이룰 수 있는 자산 성장을 이룬 다음 남는 자본이 있으면 주주에게 적극 돌려주겠다는 게 원칙이다"
이어 "이번에 자사주 3000억원을 매입하고 즉시 소각할 방침"이라며 "자사주는 매입한 다음에 당연히 소각돼야 하는 게 시장의 원칙이므로 주주환원 시 이 부분을 대단히 많이 신경쓰겠다"고 강조했다.
서 부사장은 지난 3분기 컨콜에서 이와 같은 업그레이드 된 배당 정책 발표 계획을 예고한 바 있다. 당시 서 부사장은 "배당에 있어 경쟁사보다 뒤처질 이유는 없고 배당성향을 낮게 가져갈 이유도 없다"며 "4분기 종료하고 1분기 중에 더 의미 있는 배당 정책을 내놓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씨티증권 애널리스트는 "수학적으로 CET1 비율 13% 목표는 달성될 것으로 본다"며 "현재보다 높은 배당성향, 40~50% 수준의 배당성향도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서 부사장은 "내부적인 순익 목표가 달성되고 자기자본 비율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주주환원 원칙을 당연히 지킬 것"이라고 짧게 답했다.
Q&A에서 오간 CET1 비율은 주요 금융 회사의 자본안정성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금융회사의 자본은 크게 보통주자본, 기타기본자본, 보완자본으로 구성된다.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BIS 기준 총자본비율(BIS비율)과 '순정자본'만을 다루는 보통주자본비율(CET1비율)을 함께 살펴보면 금융사가 위험가중자산(RWA) 대비 얼마나 충분한 자본을 보유하는지 알 수 있다.
CET1비율은 은행의 손실을 가장 먼저 보전할 수 있는 알짜 자본을 보여준다. BIS비율에는 신종자본증권이나 후순위채권 등 은행의 조달 능력까지 반영된다. 두 지표에는 각 은행의 위기대응능력은 물론 자본을 조달하는 특징까지 담긴 셈이다.
KB금융은 CET1 비율을 13%로 제시하고 이를 유지하는 수준에서 주주환원을 하기로 했다. KB지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CET1 비율은 13.25%를 기록했다. 견조한 이익 창출력에 기반해 보통주 자본 중심의 자본 적정성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주요 은행마다 시기별로 조금씩 CET1 비율이 달라지지만 대부분 12~13%를 타깃으로 한다. 금융당국은 10.5%를 규제 가이드로 보고 있으며 통상 11%가 넘으면 M&A를 위한 재원 마련이 된 것으로 본다. 13% 수준의 CET1 비율 타깃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보여주는 숫자다.
이를 방증하듯 4분기 컨퍼런스콜에선 상대적으로 재무 건전성에 대한 이슈는 관심이 떨어졌다. JP모간 애널리스트가 '부코핀 은행의 정상화 시점'에 대한 질문이 유일했다.
이에 대해 조남훈 글로벌사업그룹장(전무)은 "2025년에는 흑자를 내고, 2026년부터는 ROE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KB금융은 2018년 7월 인도네시아 부코핀 은행 지분 22%를 최초로 취득했다. 이후 지분율을 늘려 현재 67%로 최대주주다. KB금융은 부코핀 은행의 부실 상황을 인지하고 정상화 작업을 밟았으나 코로나19 장기화로 계획이 지연됐다. 최초 지분 취득 후 지금까지 8000억원가량을 수혈했다. 지난해 고정이하여신(NPL)보다 더 많은 대손충당금(한화 5700억원)을 적립했다.
◇연말 컨퍼런스콜의 주 관심 '리스크 관리→주주환원 기대감'
KB금융의 작년 3분기 컨콜에서는 주주환원과 관련한 질문이 두 개에 불과했다. '추가적인 자사주 활용 계획은 무엇인지', '손해보험사 실적 증가가 지주의 배당 확대로 이어질지' 등이 전부였다.
애널리스트들의 질문 7개 가운데 5개는 시장의 우려가 섞여 있었다.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조달금리와 관련해 금리 인상인 (2022년) 3분기에 본격화됐다"며 "분명 마진이 주어질 것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못한 것 같은데 내년(2023년) 마진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또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2022년 하반기) 리파이낸싱이 어려워지면서 부동산 PF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어떤 형태로 익스포저를 가지고 있는지, 요주의 사업장 규모는 어떤지 사업 전망과 리스크 관리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한 바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매크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소비와 투자, 수출 등 경제 전반에 걸쳐 경기 침체의 시그널이 가시적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금융 시장의 안정 시그널이 나타나고 KB금융이 주주환원을 확대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리스크 요인보단 주주 환원 쪽으로 Q&A의 중심이 옮겨졌다.
다만 금융당국이 금융지주를 향해 사실상 배당 자제를 압박하고 있어 주목된다. KB금융 컨콜이 있기 하루 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업무계획 기자간담회에서 "배당 관련해 경영 자율성 보장을 전제하면서도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시기에 충분한 손실흡수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은 자율성을 보장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고배당을 자제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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