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회사채 발행 한도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장기 기업어음(CP)를 통한 자금 조달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회에서 한국전력법(한전법) 개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지 않을 경우 한전이 장기CP를 통해 회사채 발행과 유사한 조달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직 한전은 장기CP 발행에 신중한 입장이다. 금융비용이 늘어나 경영에 악순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전의 장기CP 발행은 자본시장 교란 가능성이 있어 우려가 있다. 하지만 한전채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되면 한전의 장기CP 발행은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게 크레딧 업계의 시각이다.
◇ 한국광물자원공사·대한석탄공사 등 선례
12일 크레딧업계에 따르면 국회에서 추진중인 한국전력법 개정안이 최종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한전은 장기CP 발행을 통해 운영자금과 회사채 차환 자금 등을 조달할 수 있다.
이상은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한전의 회사채 발행이 제약되더라도 대체자금조달원을 중단기적으로 활용가능하다”며 “한도계산에 산입되지 않는 장기CP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장기CP는 만기가 1년 이상인 CP로, 발행사의 입장에선 동일 만기의 회사채와 유사한 경제적 실질을 갖는다. 그러나 법적으론 회사채와 다르기 때문에 한전의 회사채 발행이 제한되더라도 장기CP를 통한 조달이 가능하다. 앞서 자본잠식으로 사채 발행한도를 넘어선 한국광물자원공사와 대한석탄공사 등 공기업이 장기CP를 발행한 전례가 있다.
이에 따라 만약 이번 한전법 개정에 실패해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해질 경우 한전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장기CP 발행 뿐일 것이라고 크레딧업계에선 내다본다.
한전은 그간 누적된 적자로 인해 당장 내년 3월 결산 이후 한전채 발행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현행 한전법상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더한 금액의 2배까지만 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데, 누적된 적자로 인해 내년 결산이 이뤄지면 기발행한 한도가 이를 초과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결산 기준 한전의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은 약 45조9000억원인데, 올해 30조원의 적자 결산에서 반영될 경우 합계액은 15조원 안팎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한전은 내년 3월 2022년 결산을 마치면 한전의 사채 발행 한도가 29조4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8일 기준 한전의 누적 회사채 발행액이 67조2000억원에 달하고 있어, 결산 이후에는 한전채 자체를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한전채 발행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액 대비 6배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전법 개정안은 이런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마련됐는데,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고, 현재 임시국회에서 재추진되고 있는 상태다.
만약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한전은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체조달수단을 찾아야 한다. 은행조달 등에도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장기CP를 통한 조달밖에 방법이 없을 것이란 게 크레딧업계의 시각이다.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한전채만 5조39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차입만으로 조달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어렵다. 내후년 이후에도 발행한 채권 만기가 지속 도래하는 만큼 1년 미만의 CP발행으론 자금난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다.
◇ 한전 “장기CP 신중히 접근할 것”
한전 역시 장기CP라는 대체자본수단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실제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현재로선 장기CP 발행 등에 대해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며 “한전채 발행보다 조달비용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전채 대신 장기CP를 발행하는 것은 한전에도, 자본시장에도 긍정적이지 않다. 한전의 입장에선 조달비용이 높아질 공산이 크다. CP는 이표채를 적용하는 무보증사채와 달리 할인율을 적용해 발행하는데, 대개 실효수익률이 권면이자율보다 높게 형성된다. 발행사 입장에선 비용부담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장기CP는 경쟁입찰 방식의 프라이싱을 거치는 한전채보다 금리 낮은 금리로 발행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규제로인해 장기CP가 한전채를 대신하게 되면 한전의 금융비용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채 발행물량이 장기CP로 향하는 건 자본시장에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전과 같이 우량한 기업이 대량의 CP를 발행할 경우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CP 시장으로 향한 기업들의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게 자명하다”며 “한전법 개정안을 막아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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