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만기 1년 이내 예금상품 비중을 대폭 늘렸다. 은행 차입으로 조달한 반도체 패키지기판 설비 투자금 중 일정부분을 안전자산으로 보유하기로 했다.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고금리 효과에 이자수익도 전년에 비해 4배 가량 늘었다.
투자전략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단기'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며 환금성 높은 자산 중심으로 리밸런싱하는 모습이다. 비유동자산인 주식 등은 그대로 놔두고 매출채권 등 확정된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자산 비중을 최대화하고 있다.
◇단기예금 1.6조원으로 확대…이자수익 쏠쏠
삼성전기의 3분기 가용현금인 현금및현금성자산(현금+단기예금)은 1조6194억원으로 집계됐다. 저점을 찍었던 올해 3월 9591억원에 비하면 무려 69%나 증가한 규모다. 이 중 순수 현금은 2000만원, 나머지는 만기 1년 이내 단기예금으로 구성돼 있다.
삼성전기의 현금성자산은 사실상 전부 '단기예금'으로 봐도 무방하다. 순수 현금 보유량은 매년 3000만원을 채 넘기지 않았다. 단기예금 항목으론 양도성예금증서(CD), 어음관리계좌(CMA), 신종기업어음(CP), 금전신탁, 정기예금, 정기적금, 수시입출금식예금(MMDA) 등을 포괄한다.
삼성전기가 올들어 예금 규모를 더 늘린 건 고금리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부터 기준금리를 3.25%까지 올렸다. 현 기준금리는 2012년 7월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 뿐 아니라 시중은행들도 수신확보에 주력하면서 예금금리 6% 문이 열렸고 이자수익을 취하기 좋은 시점이란 판단이다.
삼성전기 입장에선 최근 차입금도 늘린 터라 잉여자금이 생겨난 상황이다. 삼성전기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차입금을 대폭 확대했다. 신규 단기차입금 조달액은 6919억원으로 전년 동기 1979억원의 3배를 훌쩍 넘긴 규모다. 해당기간 장기차입금도 전년(782억원)보다 많은 1014억원을 조달했다.
이렇게 조달한 자금은 대부분 유형자산 취득을 위해 활용했다. 같은기간 유형자산(건설중인 자산) 취득을 위해 투입한 돈은 8219억원으로 전년동기(5788억원) 투자액보다 2431억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형자산 투자액도 197억원에서 올해 371억원으로 늘었다.
설비투자액을 늘린 것과 연관된다. 삼성전기는 올해 생산능력(CAPA) 증대를 위해 8333억원 시설투자를 감행했다. 전년 동기(5687억원) 대비 46.5% 늘어난 규모다. 사업부문별로 패키지솔루션에 4359억원, 컴포넌트에 2929억원, 광학통신솔루션에 284억, 연구개발을 위해 761억원 등을 쏟아부었다.
유·무형자산 투자 후 남은 짜투리 돈은 예금상품에 예치했다. 이례적으로 단기 금리가 많이 오르기도 했다. 시중은행들의 3개월 만기 예금상품 금리도 3~4%대에 달했다. 은행입장에선 정기 예금이 조달안정성이 떨어지지만, 유동성이 더 시급한 만큼 웃돈을 얹어서라도 자금 유치를 추진하는 셈이다.
삼성전기는 금융상품 등을 운용해 1~9월 총 168억원의 이자수익을 남겼다. 이미 작년 3분기 누적 이자수익(45억원)을 4배 가까이 뛰어넘는 수준이다. 차입으로 발생하는 이자비용을 충분히 상쇄한다. 삼성전기는 이자율이 100bp 상승할 경우 변동이자부 차입금의 이자비용이 당기 세전손익에 미치는 영향은 73억원 가량이다. 작년 말 85억원에 비해 줄어든 규모다.
◇NCF 평년수준 유지에도 차입 확대…단기 유동성 확보 총력
삼성전기는 본업으로 벌어들이는 영업활동 현금창출력(NCF)은 양호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9월 말 NCF는 1조2609억원으로 전년동기(1조2392억원) 수준이다. 영업활동으로 창출된 현금은 1조5660억원으로 더 많지만, 법인세 납부액이 3175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전체 규모는 소폭 줄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동성 확보 방안의 일환으로 '단기 차입'에 적극 나섰다. 성장성이 좋은 반도체 패키지기판 캐파확대를 위한 투자가 불가피했고, 동시에 유동성 확보도 중요과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유동자산 확보에도 주력하는 가운데 기타금융자산 비중을 늘리는 모습이다. 특히 단·장기금융상품은 3월3390억원, 6월 4590억원까지 치솟았다. 기존 390억원대 수준을 유지해오던 것과 달리 10배 넘게 늘린 셈이다. 국공채나 미수수익, 예치·임차보증금 비중은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주식 투자는 예년보다 자제하는 모습이다. 올해 1~9월 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 취득액은 10억원으로 작년(19억원) 보다 줄어든 수치다. 반대로 처분량은 7억원으로 작년(4억원) 보다 늘렸다. 최근 주식시장이 악화돼 지분증권 가치가 하락한 영향도 있지만, 주식 자산 자체를 단기매매 차익 수단으로 보지 않는 투자방침도 한 몫 한다.
삼성전기는 삼성중공업, 아이마켓코리아, 솔루엠 등 대부분 상장사 주식을 기타포괄금융자산(비유동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비상장주식 중 인텔렉츄얼디스커버리, 코리아오브컴, 옵티스, 케이비아이코스모링크 등의 지분만 단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으로 계상해 관리 중이다.
매출채권 등 확정된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부분도 최대화했다. 채권 자산은 올초 1조2870억원에서 9월 말 1조3657억원으로 늘어났다. 3분기 중 와이파이 통신 모듈 사업을 매각해 처분대가로 현금 600억원을 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