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한화건설의 흡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한화생명 지분을 ㈜한화 산하로 모으기 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중장기적으로 그룹의 전체 경영권을 지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한화그룹 안팎에선 김 회장의 세 아들과 관련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는 역할 분담 시나리오가 있다. 바로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이사 사장이 그룹 총수로서 화학과 방산 등 제조업을 맡고 차남은 금융, 삼남은 유통을 맡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화생명 지분이 ㈜한화로 오면 금융계열사 독립이 한층 쉬워진다. 한화생명은 한화그룹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정점에 있다. 한화생명을 통해 나머지 금융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추후 금융계열사들을 단 한번에 김동원 한화생명 부사장에게 넘길 수 있게 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럴 의지와 이유가 있을 때'의 얘기다. 한화생명마저 ㈜한화 아래 놓이면서 ㈜한화를 지배하는 사람이 그룹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른바 '승자 독식(Winner Takes it All)'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한화생명 비롯 금융계열사까지 ㈜한화 아래로
흡수합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화의 지주사 전환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이 충족됐다고 판단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를 해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대차대조표상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동시에 보유한 자회사 주식 합계액이 자산 총액의 절반을 넘기면 지주사로 본다.
㈜한화는 현재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해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아니다. ㈜한화의 지주비율(총자산 중 자회사 지분가액 비율)은 2019년 44%에서 지난해 48%까지 높아졌다. ㈜한화의 자산총계는 8조원, 종속기업과 관계기업 투자액은 4조8000억원이었다. 이중에서 손자회사인 한화생명에 대한 지분가액(9140억원)을 제외해도 지주비율이 48%였다. 한화생명 지분가액이 자회사로 잡히면 지주비율이 50%를 훌쩍 넘게 된다.
지주사로 전환되면 우선 금산분리 원칙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비금융 지주사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한화생명 지분을 처분해야 한다. 유예기간은 2년이다.
문제는 한화생명 규모 등을 봤을 때 그룹 내부에는 지분을 사들일 마땅할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외부 매각은 아예 검토에서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다른 그룹의 경우 금융회사를 외부에 매각했다.
그러나 한화그룹에서 금융계열사들은 그룹 기여도가 매우 높아 그냥 포기하기 어렵다. 시나리오대로라면 김동원 부사장이 해당 지분을 사들이면 간단하지만 유예기간 안에 사들이기엔 자금 등 현실적으로 여력이 없다.
중간금융지주사법 제정이 가능해지면 문제가 훨씬 간단해진다. ㈜한화가 한화건설을 흡수합병한 후 다시 분할을 통해 중간금융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추후 계열분리가 이뤄진다면 김동원 부사장이 중간금융지주사 지분만 확보하면 된다.
중간금융지주사는 일정한 규정 아래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를 동시에 지배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그간 국회 입법이 번번이 좌절됐지만 새정부가 금산분리 완화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간금융지주사가 도입되면 ㈜한화가 계속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는 게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굳이 처분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화가 기존 한화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이어 금융중간지주사까지 거느리면서 화학, 방산, 항공우주, 에너지, 금융 등 그룹 사업영역 전반에서 완전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동생들과 격차 벌리는 김동관 사장
이번 흡수합병이 한화그룹 승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지금까지는 그간 재계에서 나왔던 승계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동관 사장은 주요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에 오르며 경영 보폭을 넓히고 있고 차남은 금융 사업에, 삼남은 유통 사업에 각각 몸담고 있다.
그러나 워낙 격차가 크다. 두 동생들이 금융 사업과 유통 사업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이 김 사장과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김동관 사장이 1983년, 김동원 부사장이 1985년생, 김동선 상무가 1989년생이라는 점을 볼 때 나이와 경험 차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김 사장의 존재감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커졌다. 2020년 한화솔루션, 2021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등기임원에 올라 경영 보폭을 넓혔다. 올 들어선 그룹의 핵심인 ㈜한화에서도 등기임원에 올랐다. 해마다 역할이 늘어나고 무게감 역시 가중되고 있다.
차남 김동원 부사장은 2014년 한화그룹에 입사해 2015년부터 한화생명에 몸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경영 능력을 증명할 만한 뚜렷한 성과는 없다.
한화생명에서 디지털, 신사업, 해외 사업 관련 보직을 두루 거쳤으나 눈에 띄는 결과물을 낸 적은 거의 없다. 지난해 초에는 전략부문장에도 올랐다가 9개월 만에 내려왔다. 현재는 최고디지털책임자(CDO)만 맡고 있다. 시나리오대로 금융계열사를 물려받으려면 경영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삼남 김동선 상무 역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김동선 상무는 2020년 말 한화에너지를 통해 그룹에 복귀했으나 곧바로 휴직계를 냈고 지난해 5월 한화에너지가 아닌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서 미래전략실장을 맡으면서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에서 신사업전략실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전과 같이 유통 사업을 중심으로 몇몇 계열사를 들고 독립한다는 시나리오에는 이미 차질이 생겼다. 유통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한화갤러리아가 한화솔루션으로 흡수합병됐기 때문이다.
결국 계열분리가 아닌 공동경영 형태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동관 사장이 그룹 총수이자 절대적 지배력을 유지한 채 금융 사업은 김동원 부사장이, 유통 사업은 김동선 상무가 챙기는 방식이다.
계열분리는 보통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룹을 쪼개 규모가 줄어드는 것 자체를 반길 사람은 거의 없다. 계열분리가 고육지책의 성격을 가진다고 볼 때 경영권 분쟁의 여지만 없다면 굳이 계열분리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김승연 회장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10여년 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선친의 유지 중 하나가 '그룹을 쪼개지 말라'는 것이었다"며 "그룹의 특징이 여러 회사가 엉켜있어서 글로벌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지 따로 놀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