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이 코로나 시기 자본 확충을 위해 발행해 뒀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의 콜옵션(조기상환권) 시점이 올해 상반기 도래한다. 제주항공은 최근 여객기 참사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탓에 사업 기반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상환을 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스텝업 금리가 적용돼 이자율이 연 8~9% 수준으로 치솟는다.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오는 6월 364억원 규모의 영구채 콜옵션 행사가 예정돼 있다. 지난 2020년 12월에 발행했던 64억원 규모와 2021년 12월에 발행했던 300억원 규모의 사모 영구전환사채(CB)다. 당시 코로나 확산으로 항공업계가 어려움에 처하자 산업은행의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으로 지원을 받았다. 두 건의 영구채는 모두 콜옵션 시점을 올해 6월로 설정해 뒀다.
제주항공은 엔데믹으로 실적이 개선되자 기안기금 상환에 돌입한 상태였다. 제주항공의 매출액은 2020~2021년 3000억원 안팎에 머물렀지만 2023년 1조7240억원으로 급증하면서 코로나 이전을 웃돌았다. 같은기간 영업이익도 3000억원대 적자에서 약 1698억원 규모 흑자로 돌아섰다. 제주항공은 2022년 콜옵션 시점이 돌아왔던 400억원 규모 영구채를 한 차례 연장했지만, 2023년 말에는 현금창출력 개선에 힘입어 상환한 바 있다.
올해 남은 364억원 규모 영구CB도 상환이 유력했지만 최근 제주항공의 항공기 참사가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 제주항공의 연결기준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약 2200억원으로 영구CB 상환에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의 착륙 사고가 발생한 이후 수만 건의 항공기 예약 취소가 발생하고 있어 유동성 추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항공이 항공권 예약 판매를 통해 미리 받은 선수금만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약 2600억원 규모로, 현금성 자산보다 많은 수준이다. 예약 취소 물량이 일정 수준에 그친다면 당장의 유동성 문제로 확대되지는 않겠지만, 향후 사업적 기반이 얼마나 훼손될지 가늠하기가 어려워 현금흐름의 예측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영구CB의 상환을 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오는 6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영구채 이자율은 연 8~9% 수준으로 치솟게 된다. 제주항공의 영구채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가산금리가 붙기 때문인데, 콜옵션 시점의 국고채 5년물 금리에서 발행 당시의 국고채 5년물 금리를 뺀 값에 연 7.5%를 더한 값이 스텝업 금리로 적용된다. 현재 제주항공의 영구채 발행금리는 5~5.1%로, 만기 연장 시 당장 올 하반기부터 3%포인트 넘게 금리가 뛰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난해 말 참사 이후 예약 취소가 몰리고 있는 데다가 향후 매출 규모가 얼마나 타격을 받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영구채 물량이 그리 크지 않아 예년의 제주항공 현금흐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예약 취소 물량 등에 따라 대응 여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항공 측은 “현재까지 예약 취소가 발생하고 있지만 선수금 가운데 일부만 빠져나갔다”며 “예약 유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고 현금 여력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