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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은 2024년 1월 상장사 주주가치 제고 독려 및 정책적 지원을 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발표했다. 미국, 일본 등 글로벌 증시 대비 유독 낮은 한국 주식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이다. 이와 맞물려 많은 상장사들은 대규모 주주 환원책을 내놓는 등 정부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종목들의 주가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벨은 주요 상장사들의 밸류업프로그램에 대해 리뷰해보고 단발성 이벤트에 그칠지, 지속적인 밸류업이 가능할지 점검해 본다. 이 과정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되는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과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반도체 제조업체 'DB하이텍'이 효율적인 자본 배치를 기반으로 주주 환원을 확대해 나간다. 환원 가능한 재정적 여력을 늘리기 위해 자본 체력을 강화하고 자본 초과 수익을 확보할 계획이다. 현재 자본 효율성 지표가 부진한 상황인 만큼 이를 개선하는 게 과제다.
다만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진 않았다. 자본 초과 수익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주주 환원 정책을 어떻게 뒷받침해 나갈지 상호 간 연결 고리는 희미한 상태다. 우선 자본 이익률을 높여 비용과 간극을 확대하는 형태로 밸류업 정책을 전개할 것이란 대략적인 방향만 제시했다. 자기주식 처분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도 아직 세우지 않았다.
DB하이텍은 최근 자체 기업가치 제고안을 발표하며 당국에서 권고하는 밸류업 정책에 동참했다. 앞서 지난 6월 밸류업 공시 계획을 선제적으로 예고, 내부적으로 관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밝혔다. 재무적 요소를 비롯해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전개하기로 했다.
지난해 추진한 물적분할은 밸류업과 상관없이 진행됐다. DB하이텍은 지난해 5월 반도체 설계사업부를 분할해 신생 법인인 'DB글로벌칩'을 설립했다. 물적분할 방식으로 존속 법인 DB하이텍이 DB글로벌칩 지분을 100% 갖는 형태로 이뤄졌다.
DB하이텍 관계자는 "물적분할 추진 당시 개인 주주가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주주 친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야겠다고 인지한 부분은 있지만 각 사안이 밀접하게 연관된 것은 아니다"며 "시장 전반에 기업가치 제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이에 동의하면서 주주 권익 강화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DB하이텍은 자본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주요 밸류업 전략으로 꼽았다. 자본 체력을 확보해 주주 환원 여력을 확대한다는 게 골자다. 이는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자본비용(CoE, Cost of Equity) 간 차이를 벌림으로써 실현 가능하다. ROE와 CoE간 차이(자본 초과 수익)가 클수록 사업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고 이에 따른 주주 환원 여력도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DB하이텍은 자본 초과 수익이 크게 축소된 상황이다. 지난해 사업연도 기준 ROE와 CoE 간 차이는 1%포인트에 그쳤다. ROE 수치가 전년대비 급락한 탓이다. 이 기간 매출이 감소해 영업 이익이 위축됐고 순익 추가 확보에도 애를 먹으며 결과적으로 수익성 지표가 악화됐다. 지난해 자본 초과 수익 수치(약 28%)와 비교하면 주주 환원 여력이 눈에 띄게 위축됐다.
DB하이텍은 금번 밸류업 계획에서 자본 초과 수익 목표치 등은 별도 제시하지 않았다. 우선 ROE를 늘려 주주 환원 여력을 확충하겠다는 개괄적인 방향만 설정했다. 이를 위해 고부가 제품을 확대하고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과 연계한 실적 향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8년까지 향후 5년간 30%의 주주 환원율을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기존 대비 배당을 늘리고 자기주식 매입을 확대하는 식으로 실현한다는 목표다.
다만 자기주식 취득분 처분에 대해선 확정된 것이 없다. DB하이텍은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 전체 발행 주식수의 6.3%인 281만7290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약 2년여에 걸쳐 총 1200억원을 자기주식 매입 재원으로 활용했다. 실제 DB하이텍 기타자본구성요소 가운데 자기주식 항목은 지난해 초 마이너스(-) 201억원에서 올 상반기 말 -1240억원으로 변화했다.
DB하이텍 관계자는 "현재 공개한 5년의 밸류업 기간 동안 자기주식을 소각하는 것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다"며 "자본 초과 수익 관련 CoE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한 계획도 별도 논의하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