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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인(法人)의 탄생과 지분 관계 형성에는 배경과 목적이 있다. 기업은 신사업 진출, 해외시장 개척, 합작 등을 위해 국내외에 법인을 만들거나 지분 투자에 나선다. 이는 연결 회계에 흔적을 남긴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이뤄지지만 모든 관계가 영속하지는 못한다. 지분을 매각하거나 최악의 경우 청산을 택하기도 한다. 법인을 없애거나 주식을 매도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실적 부진이나 본사의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 여러 이유로 자취를 감춘다. 이는 기업의 사업 전략을 전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더벨이 기업의 연결 회계에서 법인이 명멸하는 과정을 내밀히 들여다본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에스에프에이(SFA)의 자회사인 에스엔유프리시젼의 주식을 전부 매각했다. 2011년 유상증자에 참여해 주식을 취득한 뒤 형성된 지분 연결고리를 13년 만에 완전히 끊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앞으로도 에스엔유프리시젼과 협력 관계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번 주식 처분은 현금 확보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후문이다.
다만 확보한 금액이 크지 않고 삼성디스플레이가 에스엔유프리시젼의 모회사인 SFA의 주식도 최근 모두 정리했 점이 주목된다. 그간 이어온 양사 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1년 유증 참여 후 주식 보유, 보유 지분 3.13% 전부 매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에스엔유프리시젼 주식을 처음으로 확보한 시점은 2011년이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2010년 12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고 삼성디스플레이(당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가 취득자로 등장했다. 전환사채(CB)와 보통주 신주를 취득했다. 각각 153억원, 142억원 규모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다. 당시 삼성디스플레이는 5.5세대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 생산 확대 과정에서 협력을 위해 이곳에 투자했다. AOLED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고 양산체제를 조기에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에스엔유프리시젼 유증에 자금을 투입한 뒤 지분 5.26%를 확보했다. 오너 경영자인 박희재 대표에 이어 단숨에 2대 주주로 등극했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긴 이후로도 주식을 지속 보유했다. SFA가 2016년 박 대표의 지분을 매입하고 유증에 참여하면서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유증으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지분율은 3.44%까지 하락했고 박 대표에 이어 3대 주주가 됐다.
2018년에는 SFA의 CB 전환권 행사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지분율은 3.13%로 낮아졌다. 그 후로도 삼성디스플레이는 에스엔유프리시젼 지분을 매도하지 않았다. 보유 주식 수는 107만5446주로 유지됐다.
이후 지난해 말 보유하던 에스엔유프리시젼의 지분 전량을 한꺼번에 매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유증에 참여한 뒤 13년 만에 에스엔유프리시젼과의 지분 관계를 끊은 것이다.
◇매각금액 '소규모'·SFA 주식도 매각…"협력관계 지속" 에스엔유프리시젼의 주가는 지난해 유독 변동성이 컸다. 2023년 5월 19일 주당 5410원을 기록한 뒤 하락 추세가 이어졌다. 같은 해 10월 31일 주가가 2275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소폭 오름세를 보였지만 예전 수준의 회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작년 12월 28일 종가는 2845원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했던 에스엔유프리시젼 주식 107만5446주를 작년 최저가와 최고가에 대입하면 매각을 통해 최소 25억원에서 최대 58억원의 금액을 건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13년 전 초기 투자 비용(142억원)과 이자율 등을 고려하면 차익을 전혀 남기지 못한 셈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주식 매각을 양사 협력 전선의 이상징후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번 지분 정리가 현금 확보 차
에스엔유프리시젼 지분 매각 대금이 실탄 확보에 보탬은 되는 수준이지만 절대적인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기업 규모와 현금 보유량 등을 고려할 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 삼성디스플레이가 에스엔유프리시젼의 모회사인 SFA의 지분도 최근 매각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작년 6월 보유 중이던 SFA 주식 중 일부인 154만4000주를 주당 3만5777원에 팔았다. 총금액은 552억원이다.
이후 올 들어서도 매도를 이어갔다. 2월 1일 시간외매매(블록딜) 방식으로 32만3000주를 주당 2만5203원에 매각했다. 총 매각 금액은 81억원이다. 지분율은 5.85%에서 4.95%로 내려가 공시 의무에서 벗어났다. 같은 달 말에는 나머지 4.95%도 블록딜로 매각해 470억원을 확보했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SFA 측과의 협력은 지분 관계와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