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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 자금조달 그 후

재무적 과제 짊어졌다…박상규 사장의 선택은

⑤탄소 비즈니스 정리에 집중할 듯…재원 마련의 효과도 있어

이호준 기자  2023-12-22 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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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5억원'. SK이노베이션이 3개월 만에 감축한 차입 규모다. 대규모 자금을 단기에 조달하기 위해 기획한 조단위 유상증자의 성과답게 상당하다. 문제는 앞으로다. 채무 상환에 배정된 돈은 사실상 다 지출했다고 보는 게 맞다. 돈 들어올 구멍이 또 있을지, 계열사들을 지원할 여력은 있는지, 새 수장 박상규 총괄사장은 어떻게 대처할지 등 회사가 마주한 고민을 다시 곱씹게 한다. SK온 수혈과 유상증자 후 바뀐 SK이노베이션은 어떤 상황일까. 더벨은 전환점이라 부를 수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사업적·재무적 변화를 진단해 본다.
무려 7년 동안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를 지낸 김준 부회장이 물러난 자리는 박상규 총괄사장이 물려받았다. 박상규 총괄사장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SK㈜와 SK네트웍스에서 활약한 인물. 경력에서 드러나는 그의 역할은 '체질 개선'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현안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SK이노베이션의 관심은 친환경 사업의 비중을 높이는 일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주력 사업은 정유·석유화학 등 탄소 비즈니스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변화'가 쉽지 만은 않았다. 손꼽히는 전략통이라는 평가를 받는 박상규 총괄사장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체질 개선' 전문가 박상규 사장…탄소 비즈니스 비중 낮출까

사업 재편의 완성은 '고른 수익구조'다. 이런 면에서 SK이노베이션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차전지·분리막·플라스틱 재활용으로 사업 방향성이 확실하게 정해졌지만 수익구조 만큼은 아직도 정유·석유화학 계열사에 쏠려있는 탓이다. 2022년 연결 영업이익(3조9173억원)에서 SK에너지의 비중이 67%(2조6000억원)에 달한다.

결국 박상규 총괄사장의 부임이 보여주는 건 명확하다. 그동안 SK이노베이션이 이차전지·분리막·플라스틱 재활용 등 신사업 발굴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찾는 데 집중해 왔다면 앞으로는 비주력 사업을 빠르게 덜어내기 위한 그의 전략과 능력에 힘을 제대로 실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대부분 박상규 총괄사장이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영역이다. 그의 커리어만 봐도 알 수 있다. 1987년 유공에 입사해 2010년까지 SK㈜ 투자회사관리실, SK네트웍스 S-Movilion 본부 등에 몸담았다. 2011년 SK㈜로 다시 자리를 옮긴 뒤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는 등 요직에 중용됐다.

2017년부터는 SK네트웍스 총괄사장을 맡아 사업 재편을 이끌었다. 재임 기간 에너지 사업 부문 내 홀세일(Wholesale) 사업부와 직영주유소 사업을 SK에너지에 매각했다. 대신 SK렌터카(옛 AJ렌터카)를 인수하며 기존 정보통신·상사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 무게 중심을 소비재·렌탈로 옮겼다.

그 뒤에도 철강 트레이딩 사업을 접는 등 변화를 이끌었으며 2023년에는 SK엔무브 사장에 올랐다. 올해는 SK엔무브의 사명 변경이 진행된 해로, 2040년 전기차용 윤활유 시장에서 글로벌 톱티어로 도약한다는 목표도 제시됐다.


◇재무적 과제 짊어지고 출발…자산 매각 가능성↑

물론 대외 환경이 우호적이지는 않다. 특히 기존에 SK이노베이션이 안고 있던 재무적 과제를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 선택지가 많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자금 소요가 워낙 많다. 2021년 중장기 경영전략을 발표하며 2025년까지 모두 3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지만 회사는 올해만 벌써 1조2800억원의 단기 차입을 일으킨 상황이다. 올해 단행한 유상증자로 채무를 일부 상환했지만 부채비율이 175% 수준이라 계속된 차입은 부담이다.

여기에 최태원 회장은 지난 10월 '서든데스' 위험성을 경고하며 일부 계열사의 투자 사례를 직접 질책했다. 현재 SK그룹 일부 계열사들은 최 회장의 질책을 계기로 투자 조직의 축소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상규 총괄사장으로선 돈을 빌리기도 잘 쓰기도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우선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화 작업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그린 비즈니스(이차전지·리사이클링 등) 전략의 조기 실행으로 친환경 자산 비중 70% 목표 달성 시기를 기존 2025년에서 2024년으로 앞당긴 상태다. 탄소 기반 사업을 정리해 재원 확보와 사업 전환을 동시에 이끌 것이라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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