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주도하는 라이프사이언스펀드가 2호 출범을 앞두면서 결성액 기준 'K바이오 백신 펀드(이하 메가펀드)'를 단숨에 넘어서게 됐다. 당초 메가펀드는 2025년 결성 총액 1조원을 목표로 두고 정부 출자 지원에 힘입어 연내 야심찬 출범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대규모 펀딩에 나서기도 전 운용사(GP) 모집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엔 펀드 결성과 운용을 위한 정부 지원 예산마저 대폭 감축되면서 힘겨운 표류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민관 합동 '1조 메가펀드' 마수걸이 결성조차 실패…상징성+실리 모두 잃어 삼성그룹은 이달 삼성라이프라이언스펀드 2호를 출범을 결의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2호 펀드의 결성총액은 688억원. 앞서 2021년 8월 조성한 라이프사이언스 1호 펀드(결성총액 1700억원)를 합치면 결성총액 최소 2400억원에 달하는 바이오 섹터 타깃 펀드의 LP로 올라섰다.
삼성그룹이 바이오 섹터 투자의 핵심 주체로 부각하는 사이, 비슷한 시기에 약 5000억원 규모, 2025년까지 1조원의 펀드를 민관 합동으로 꾸린다는 메가펀드 계획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당초 제시한 올해 상반기 펀드 조성은 이미 물건너갔고 연내 1호 펀드 출범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초 메가펀드는 올해 5000억원 규모의 펀드 조성을 위해 2개 GP를 꼽고 이를 각각 2500억원씩 쪼개 진행할 계획이었다. 다만 최근엔 각 펀드 규모를 1500억원으로 줄이고 정부가 350억원을 우선 출자키로 하면서 연내 출범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 또한 사실상 삼성그룹이 최소 2400억원에 달하는 섹터 타깃 펀드 결성을 전후로 재평가 기로에 들어서게 됐다. 라이프사이언스펀드의 대두로 '근래에 없던 대규모 섹터 타깃 펀드' 구축을 전면에 내세웠던 메가펀드의 상징성이 상당히 희석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메가펀드는 아직 1호 펀드도 조성하지 못했는데 정부는 100억원에 달하던 메가펀드 예산안을 2024년엔 0원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일각에서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에 의구심을 내비치는 배경이다. 또 미래에셋벤처투자·미래에셋캐피탈이 메가펀드 GP로 선정됐다가 지위를 반납까지 하다보니 딱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메가펀드가 출범 전부터 시장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던 배경으론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이 섹터에 유입될 거란 기대 때문이었다"며 "정부의 연내 출범 선언이 공염불이 된 상황에서 삼성그룹이 치고 나가자 순식간에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민간 주도가 옳다" 재입증… 투자 목적+대상 대대적 수정 돌입 업계에선 이번 메가펀드의 표류와 삼성그룹의 약진이 결국 투자 시장이 민간 주도로 움직이던 기존 행보가 옳다는 게 다시금 입증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심지어 메가펀드 관련 모태펀드가 공고한 K바이오 백신펀드 출자사업을 들여다보면 비히클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에 나서는 등 아직도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태펀드의 출자사업 공고에 따르면 기존 사모펀드(PEF)로 제한하던 GP 지원 가능 펀드 형태에 벤처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 등으로 참여할 수 있게 조정했다. 사실상 투자자(LP)로 삼을 수 있는 대상 범위를 대폭 넓힌 셈이다.
이와 함께 메가펀드의 투자 목적과 투자 대상, 범위도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갔다. 작년 출자사업 당시 주목적 투자대상은 제약 바이오 및 백신 분야 국내 기업이었는데 여기에 제약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디지털 치료제, ICT 기반 서비스 등으로 투자 바운더리에 포함시혔다.
메가펀드의 마수걸이 결성 자체가 어렵고 GP 이탈 이슈까지 겪자 결과적으로 출자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진 결과로 보인다. 업계에선 애초에 메가펀드의 출자사업이 섹터 현황을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시장에 대한 분석이 미진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바이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초창기 메가펀드는 투자 대상을 후기 임상, 즉 2, 3상에 돌입한 신약(치료제+백신)업체로 한정했었는데 국내에 후기 임상을 진행하는 바이오텍이 많지도 않고 이들은 대부분 코스닥에 상장한 터"라며 "각종 메자닌 비히클을 이용할 여력이 있는 곳들이라 굳이 메가펀드 드라이파우더가 없어도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