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중종양세포(CTC) 기반 액체생검 전문 기업 싸이토젠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사모 전환사채(CB) 발행을 동시에 추진한다.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세전손실) 확대에 따른 코스닥 관리종목 편입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이번에 조달한 700억원 규모 자금 대부분을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 비용에 투입한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잔여 CB 전량에 대해 전환권 행사를 이끌어내겠다는 자신감도 드러냈다.
◇홍콩계 PEF 대상 3자배정 유증·CB, 700억 조달 싸이토젠은 지난달 26일 이사회를 열고 300억원 규모의 CB 사모 발행을 의결했다.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 모두 0% 조건이다. 사채 만기일은 2028년 10월 27일까지다. 5년간 무이자로 자금을 융통한다는 뜻이다. 1주당 전환가액은 1만6137원이다. 내년 10월부터 채권 금액만큼 주식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같은 날 싸이토젠은 4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도 병행하기로 결정했다. 1주당 1만4500원에 보통주 275만8620주를 발행한다. 이번 CB와 유상증자 모두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엑셀시아캐피탈(엑셀시아)을 대상으로 추진한다. 엑셀시아는 공동으로 경영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자금 조달은 코스닥 관리종목 편입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다. 코스닥 상장사는 최근 3개 사업연도 중 2회 이상 자기자본 대비 세전손실 비율이 50%를 초과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기술 특례나 성장성 특례 제도로 상장한 기업(기술성장 기업)은 3년간 유예 기간을 제공한다.
2018년 11월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한 싸이토젠은 2021년부로 세전손실 요건 관련 관리종목 지정 유예 기간이 만료됐다. 지난해 세전손실 비율 328%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도 세전손실이 자기자본의 76%를 넘어서면서 자본 확충 필요성이 커졌다. 지속해서 사업 확장을 확장하면서 비용이 증가, 결손금이 불어난 영향이다.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 확충 효과가 나타나면서 세전손실 관련 재무 리스크를 해소하게 됐다. 향후 CB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자본금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물 들어올 때 노젓자'…美·日 공략 마케팅 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는 점 자체가 긍정적이다. 싸이토젠의 주력 사업은 침이나 혈액 등 체액으로 암을 진단하는 액체생검이다. 대다수 액체생검 기업이 암세포가 파괴되고 남은 유전자 정보(DNA)를 검체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혈액 속 암세포인 CTC를 '살아 있는' 상태로 채집한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운다.
세계적으로 액체생검 시장이 주목받고 있는 데다 자체 플랫폼을 확보한 싸이토젠의 기술력이 투자자를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조기 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더해 싸이토젠은 반도체 기술을 활용해 액체생검 정확도를 높이고 CTC에 가하는 손상을 최소화하는 역량을 갖췄다.
싸이토젠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오랜 기간의기술 검증과 회사에 대한 성장성 검토를 거쳐 성사된 것"이라며 "기술의 혁신성과 자사의 미래 가능성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강조했다.
유상증자와 CB로 조달한 자금은 해외 시장 진출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사용한다. 대부분 미국과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 비용으로 집행할 예정이다. 액체생검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해외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물 들어올 때 노를 젓는' 전략을 택했다. 국내보다 규제가 느슨하고 시장 규모가 큰 해외를 우선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판단도 담겼다.
미국 시장 진출과 관련해선 투자금을 재원 삼아 클리아랩을 인수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텍사스주 휴스턴에 있는 미국실험실표준인증 연구실(클리아랩) 엑스퍼톡스를 730만달러(약 95억원)에 인수하면서 미국 진출의 신호탄을 쐈다. 클리아랩은 미국실험실표준인증(클리아)을 받은 연구실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 없이 미국 시장에 연구실 개발 검사(LDT)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지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현지 정부부처를 포함해 제약사, 병원, 연구기관 등과 협의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액체생검 제품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한 다수 계약을 논의하고 있으며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게 싸이토젠의 설명이다. 현재 일본 국립암센터(NCC)와 자스닥 상장 제약사 다이찌산쿄 등과 공동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주가↑ CB 보통주 전환 기대…대주주 지분 희석은 고민 기존 CB 보통주 전환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내년 5월 만기가 돌아오는 4회차 CB의 미전환 잔액은 107억원가량이다. 해당 CB의 1만5899원으로 4일 종가 1만5480원을 소폭 웃돌고 있다. 신성장동력 탑재로 기업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 CB 전량을 주식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최대주주 지배력 약화는 고민거리다. 6월 말 기준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전병희 대표의 지분율은 20.11%였다. 이번 유상증자 이후 전 대표 지분율은 17.03%로 낮아진다. 기존 미상환 CB와 신규 발행한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추가 지배력 약화는 불가피하다. 게다가 이번에 발행한 CB엔 콜옵션 조항이 없어 최대주주 지분 희석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싸이토젠은 2021년 재무적 투자자(FI) 어센트바이오펀드가 주식을 장내 매수해 최대주주가 바뀐 이력이 있다. 전 대표는 CB 콜옵션 행사로 일주일 만에 최대주주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콜옵션 행사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싸이토젠은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담보제공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담보로 제공한 주식을 제외하면 전 대표 지분율이 한층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싸이토젠 측은 지배구조 변동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싸이토젠 관계자는 "PEF인 엑셀시아는 향후 엑시트 예정으로 지배구조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엑셀시아와 공동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