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How It Is Now
<주역>의 건괘는 용의 변화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데요. 잠룡은 물속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용입니다. 현룡은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용이죠. 비룡은 능력을 인정받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용입니다. 항룡은 끝까지 올라간 용입니다. 항룡은 더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진라면으로 친숙한 오뚜기, 항룡일까요 잠룡일까요. 과거 황제주로 등극했던 오뚜기의 2023년 주가 흐름은 경쟁사 농심, 삼양식품과 비교하면 답답한 편입니다. 주가는 9월 22일 종가 기준 35만 8500원입니다. 2015년 8월 13일 146만 6000원과 비교하면 현재 주가는 약 75% 하락했습니다.
라면시장 상장 경쟁사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삼양식품은 8월 14일 상한가를 기록했습니다. 22일 종가는 18만 9800원입니다. 올해 1월 2일(12만 3500원) 종가와 비교하면 54% 상승했습니다. 농심도 올해 52주 신고가인 49만원을 기록했습니다. 22일 종가는 44만원으로 1월 2일(35만 2000원)과 비교하면 25% 올랐습니다. 오뚜기는 지난 7월 26일 34만 2500원으로 52주 신저가로 눈물을 삼켰습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오뚜기의 시장 평가를 살펴볼 수 있는 수치입니다. 22일 기준 0.66배입니다. PBR 1배는 기업의 장부가치와 시장가치가 같다는 뜻입니다. 오뚜기 시장가치는 장부가치에 미치지 못하는 셈이죠. 저 PBR은 낮은 수익성·성장성 등이 요인으로 꼽힙니다. 경쟁사 농심과 삼양식품은 각각 1.07배, 2.80배입니다.
오뚜기의 미래 가치는 삼양식품과 비교하면 박한 것 같습니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의 작년 기준 매출은 각각 3조 1833억원, 9090억원입니다. 올해 반기 매출은 각각 1조 7110억원, 5309억원입니다. 올해 예상 매출은 각각 3조 5700억원, 1조 7000억원입니다. 22일 기준 시가총액은 오뚜기와 삼양식품이 각각 1조 4368억원, 1조 4289억원입니다. 시장은 매출 3배의 오뚜기를 삼양식품 가치와 비슷하다고 평가하는 셈입니다.
◇Industry & Event
오뚜기가 달라진 걸까요. 시장의 잣대가 달라진 걸까요. 2015년 황제주로 평가받았던 당시로 시계를 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오뚜기는 1994년 코스피에 상장했는데요. 당시 주가는 2만원을 조금 웃돌았습니다. 2015년 역대 최고가인 146만 6000원을 찍었죠. 단순 계산으로 20년 전 1억원의 종잣돈은 7200% 수익률로 72억원으로 불어났을 겁니다. 오뚜기의 당시 시가총액은 3조 7000억원 이상이었죠.
2015년 당시는 혼밥 열풍이 불었습니다. '1인 가구 증가'라는 트렌드와 맞물려 오뚜기가 주목받았습니다. 진라면으로 유명하지만 오뚜기는 3분 시리즈의 즉석식품 등 다양한 간편식(HMR) 라인업을 보유한 기업입니다. 당시 시장에서는 저가 포지셔닝을 기반으로 향후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HMR 시장에서 오뚜기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1인가구 증가는 HMR 시장 성장의 동력으로 꼽혔죠.
오뚜기는 3분류, 냉동식품 등에서 오랜 기술과 노하우를 보유해 HMR 시장의 추세에 맞는 제품을 출시하고 점유율을 높일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라면사업의 성장세도 있었죠. 진라면에 이어 2015년 10월 출시된 진짬뽕의 경우 라면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었습니다. 오뚜기는 진라면과 진짬뽕에 힘입어 삼양식품을 밀어내고 국내 라면시장 2위에 등극했습니다.
오뚜기는 막바지까지 오른 용이었던 걸까요. 2016년 140만원대로 황제주 지위를 유지하던 주가는 이후 힘이 빠졌습니다. 안정적인 매출 증가와 이익 창출 능력에도 카레, 3분류 등 주력 제품군의 향후 성장세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라면사업의 경우 성장률 둔화 영향을 받았고요.
무엇보다 해외시장 경쟁력이 오뚜기 주가를 누른 요인으로 평가됩니다. 삼양식품과 농심은 각각 글로벌에서 활짝 웃고 있죠. 삼양식품의 해외사업 비중은 70%에 육박합니다. 농심은 미국 2공장 효과에 힘입어 상반기 호실적을 거뒀습니다. 식품업계에서 글로벌은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으로 꼽히죠.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두 기업에 시장은 점수를 줍니다.
오뚜기는 B2C, B2B로 고르게 나뉘어 있는 사업 구조에도 내수 매출 비중이 90%를 상회할 만큼 내수 의존도가 높습니다. 해외 개척을 추진하나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국내 인구 절벽 속에 먹는 소비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사업으로만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갈수록 어렵습니다. 미국, 베트남 등에서 해외사업을 전개하지만 파괴력은 미미한 편입니다. 시장이 오뚜기 매력이 낮다고 보는 이유로 분석됩니다.
재계 관계자는 "오뚜기는 해외시장 개척에 몰두하는 삼양식품·농심과 비교해 미진한 부분이 있다"며 "시장에서 미래 가치를 판단하는 주가의 영역에서 이 같은 결과가 반영된 것 같다"고 평가했습니다.
◇Market View
사실 오뚜기는 IR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은 아닙니다. 올해 기준 리포트는 5건에 불과한데요. 경쟁사와 비교하면 시장에서 소외된 주식으로 평가됩니다. 경쟁사 삼양식품 리포트는 올해 15건입니다. 농심과는 견주기 어렵습니다. 농심은 올해 57건의 리포트가 쏟아졌습니다.
시장은 오뚜기 주가 추이를 어떻게 볼까요. 올해 5건의 리포트 중 투자의견을 밝힌 4건은 모두 매수 쪽에 힘을 실었습니다. 하이투자증권과 현대차증권은 목표주가로 각각 60만원, 56만원으로 설정했죠. 사실 오뚜기 주가가 52주 최저 수준이라는 점에서 매수 의견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매출이 감소하는 것도 아닙니다. 매년 증가하고 있고 실적 안정성 측면에서는 매우 우수한 편입니다.
다만 과거 황제주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해외사업의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 입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증권업계는 오뚜기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진한 해외사업을 꼽거든요. 한유정 한화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내수에 집중돼 있는 포트폴리오가 아쉬운 구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적극적인 해외 개척과 지역 다각화, 제품 믹스 변화 등을 통한 성장 동력 마련이 필요하다"고 분석했습니다.
◇Keyman & Comments
오뚜기 내부에서는 지지부진한 주가를 어떻게 볼까요. 먼저 홍보팀 의견을 물었습니다. 과거 진행했던 자사주 매입 등에 대해서는 현재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는 답변을 확인했습니다. 시장에서 지적하는 해외 사업의 경우 꾸준한 관심으로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고 했죠.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 같았습니다. 구체적인 답변을 받기 위해 IR 책임자와 접근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사업보고서에 작성 책임자로 남덕우 재경실장이 쓰여있습니다. 전화번호도 나와 있죠. 02-2010-0749로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 음성만 돌아왔습니다.
7차례 이상 스마트폰 통화 버튼을 누른 끝에 한 담당자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공시 담당자로 IR 담당자는 출장 탓에 부재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책임자 '남덕우 재경실장'과의 연락도 결국 이뤄지지 않았죠. 궁즉통이라고 했나요.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불현듯 과거 홍보팀을 통해 공유받은 남 실장의 직통 번호가 생각났습니다. 휴대폰 메모장을 뒤졌는데 직통 전화번호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시도했고 남 실장과 닿았습니다. 14분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남 실장과 오뚜기 주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뚜기에 따르면 재경실은 대표이사 직속 조직으로 재무와 IR 등을 총괄하는 조직입니다. 남 실장의 직급은 상무보로 파악됐습니다.
남 실장도 오뚜기 주가가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오뚜기의 자체 체력으로 주가가 회복될 것이라고 사견을 전제로 예측했는데요. 꾸준한 성장, 경쟁사 대비 다양한 포트폴리오가 결국 오뚜기 주가 상승의 펀더멘털이라는 설명입니다.
남 실장은 "농심·삼양식품과 달리 오뚜기는 사업 영역이 다양하다"며 "한쪽에서 어려우면 다른 쪽에서 뒷받침하고 수익성이 급격하게 하락하지 않는다"며 "주가가 140만원을 넘을 때에도 매출이 몇 배 늘거나 했던 건 아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과거 황제주 시절 이야기를 꺼내니 에코프로가 돌아왔습니다. 남 실장은 "에코프로도 130만원 이상 올랐다가 현재 80만원대로 내려가고 주가는 들쑥날쑥한 것 같다"며 "오뚜기는 매출도 꾸준하게 증가하고 신제품도 계속 개선해 출시한다"고 답했습니다. 해외사업의 경우 경우 느리지만 꾸준하게 투자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사주 매입 등 주가부양 수단에 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남 실장은 "자사주 매입은 소각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며 "오뚜기 상장 주식 수가 400만주에 불과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면 유통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오뚜기의 6월 말 기준 유통주식 수는 343만 9327주로 농심(578만 2623주), 삼양식품(745만 8128주)과 비교해도 적은 편이다.
주가부양을 위해 액면분할로 유통 주식 수를 늘리는 방안은 어떤지 물었습니다. 남 실장은 "주가가 60만원대일 때 나름대로 고민을 한 부분"이라며 "현재 30만~40만원대 주식들이 많고 소수점 거래도 가능해진 상황이라 액면분할 효과가 많이 희석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장 어떤 계획을 공유하기 어려운데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 실장의 담담한 말투 속에는 오뚜기가 후회의 눈물을 흘린 항룡이 아닌 힘을 비축하고 있는 잠룡이라는 메시지가 녹아 있었습니다. 창립 후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고 배당금도 줄인 적 없다고 했습니다.
오뚜기의 성장 동력을 시장이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은 필요한 것 같습니다. IR 기능 강화와 직결되는 부분이죠. 남 실장은 "외부 IR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지는 못하는 편"이라며 "향후 인력을 확충해 IR을 보강하겠다"고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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