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와 SK스퀘어가 해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 투자하는 전용 블라인드 펀드를 처음으로 조성한다. 펀드 규모는 약 1000억원으로 이 중 60% 이상을 일본 소부장 기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일본이 전 세계적인 반도체 소부장 강자로 꼽히는 만큼 투자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동향을 빠르게 파악하기 위한 움직으로 해석된다. 일본 소부장 기업과의 기술·사업 협력을 확대 목적도 엿보인다. 나아가 투자를 계기로 인수·합병(M&A)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미국 소부장 생태계 정조준 4일 SK그룹의 투자 전문 지주회사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는 신한금융그룹, LIG넥스원과 1000억원을 공동출자해 일본과 미국 등 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투자 법인 'TCG SQUARE'도 설립했다.
TGC SQUARE의 최고경영자(CEO)는 최우성 SK스퀘어 반도체 투자담당(MD, Managing Director) 겸 SK텔레콤 재팬 대표가 맡기로 했다.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조희준 전 BNP파리바 일본법인 영업담당을 선임했고, 전문심사역으로는 미야모토 야스테루(Miyamoto Yasuteru) 전 크레디트스위스 부사장을 영입했다.
그동안 SK하이닉스가 국가 주도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에 출자한 적은 있지만 그룹 차원에서 단독으로, 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에 조성하는 펀드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일본 등 특정 국가 기업 투자용 펀드를 조성한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일본에는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전 영역에서 대체가 어려운 하이엔드(High-end) 기술에 특화해 전 세계 시장점유율 30% 대를 차지하는 글로벌 1~2위 기업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며 "SK스퀘어와 SK하이닉스는 일본의 반도체 검사장비 개발사 A사, 친환경 반도체 부품 제조사 B사, AI 반도체 개발사 C사, 차세대 반도체 소재 개발사 D사 등 잠재적 투자 대상 기업을 중심으로 기술검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펀드, 어떻게 운영할까 관건은 앞으로 단순히 재무적 투자를 넘어 실제로 사업적 협력을 강화하고 SK하이닉스의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SK하이닉스는 과거 키옥시아(옛 도시바메모리) 투자를 성사시켰으나 재무투자 외에 사업적 협력 효과 면에서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펀드를 운용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 이후 밸류업(기업 가치 증대)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예를 들어 SK 하이닉스 네트워크 기반 사업·기술협력을 확대하고 향후 M&A(인수합병)와 IPO(기업공개)를 지원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상황이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하나인 SK하이닉스도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일본 투자·협력 환경에 놓여 있다.
한편, TGC SQUARE 법인은 SK ICT 관계사들이 운영 중인 해외투자 거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투자처를 발굴할 수 있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SK ICT 관계사들은 일본과 미국에 SK텔레콤 재팬(일본 도쿄), SK하이닉스 벤처스(미국 세너제이), SK스퀘어 아메리카(미국 뉴욕), SK텔레콤 아메리카(미국 산타클라라) 등 여러 투자법인을 운영 중이다. 최우성 TGC SQUARE CEO는 "글로벌 유수의 소부장 기업과 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미래 반도체 기술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