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인터넷사업자가 돈을 벌 길은 한정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커머스사업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그러나 이 둘의 전략이나 성장양상은 각기 다르다. 네이버는 한국 검색 플랫폼의 1인자답게 최저가 목록보기 등을 구현하는 네이버쇼핑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커머스 시장의 앞단에서 달리며 정통 유통 강자를 위협할 정도로 컸다.
동시에 글로벌 C2C(개인 간 거래)사업도 육성하고 있다. 미국의 중고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Poshmark)가 대표적이다. 네이버가 이커머스 시장의 선두주자에 오르는 동시에 C2C사업을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을 취한 셈이다.
반면 카카오는 틈새시장 공략에 힘을 주고 있다. 카카오톡으로 메신저시장을 꽉 잡고 있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키웠다. '선물하기'라고 이름붙인 관계형 커머스가 대표적이다. 또 카카오톡 내 쇼핑탭을 만들고 그립, 지그재그 등을 인수하며 사업을 점차 확장하고 있다. 안정적 고객기반과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사업을 육성한다는 의미다.
◇네이버, C2C+정통 이커머스 투트랙 공략
23일 통계청과 교보증권에 따르면 이커머스 시장에서 네이버가 쿠팡의 턱밑까지 추격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 이커머스 시장점유율에서 쿠팡은 24.5%로 1위를, 네이버는 23.3%로 2위를 기록했다. 쿠팡과 네이버의 격차는 불과 1.2%p(포인트)에 그친다. 3위인 쓱닷컴과 지마켓(G마켓)과 격차도 크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네이버의 경쟁력이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국신용평가는 “다양한 상품과 멤버십 혜택, 배송 등 물류 효율성을 갖춘 네이버, 쿠팡 등 상위 사업자 중심으로 이커머스 고객이 몰릴 가능성이 높고 시장경쟁이 완화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IT회사인 네이버가 이커머스, 정통 유통기업마저 제치고 위협하는 셈이다.
네이버가 커머스사업을 시작한 것은 벌써 23년째다. 네이버는 2001년 ‘네이버쇼핑’ 서비스를 출범하면서 사업을 시작해 2014년 ‘스토어팜(현 스마트스토어)’을 출시, 소상공인이 상품을 손쉽게 올리고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쇼핑몰 구축 플랫폼 사업을 진행했다.
네이버쇼핑이 강력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국내 1위의 검색 경쟁력에 네이버페이 서비스를 결합한 덕분이다. 멤버십 적립혜택으로 소비자는 할인받을 수 있는 폭이 크고 소상공인 입장에서 G마켓, 11번가 등 오픈마켓보다 판매 수수료가 저렴하니 소비자와 상인들이 네이버로 몰리는 건 당연했다.
네이버는 또 강력한 이커머스사업자로 거듭나기 위해 배송, 물류 동맹도 맺었다. 쿠팡이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 물류센터를 짓고 있는 동안 네이버는 CJ대한통운과 2020년 10월 6000억원 규모로 지분을 교환한 것을 시작으로 파스토, 투핸즈 등과도 동맹전선을 구축했다. 생필품 등의 빠른 배송은 CJ대한통운이, 파스토와 투핸즈는 소상공인 상품 배송 등을 맡는다.
동맹에 기반을 둔 배송서비스는 더욱 강화할 전망이다. 네이버는 상품 도착일의 정확도를 높이는 ‘도착보장’ 서비스를 선보였는데 전체 브랜드 스토어의 25%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커머스 외에 네이버가 공략하는 시장은 또 있다. 바로 C2C(개인 간 거래) 시장이다. 네이버는 미국 C2C 패션 플랫폼 기업 포시마크 지분 100%를 올 초 1조6700억원에 인수했다. 네이버 사상 최대 빅딜로 꼽힌다.
이밖에 유럽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의 최대주주에 오르고 크림(KREAM)을 중심으로 C2C사업 전초기지를 구축, 동남아사이의 C2C 플랫폼을 빠르게 흡수하며 덩치를 불렸다. 덕분에 네이버가 전세계 1위 C2C 플랫폼으로 발돋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덕분에 네이버의 커머스부문 거래액은 2022년 40조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커머스부문 매출 비중도 상당하다. 네이버의 전체 매출에서 커머스 광고, 중개 및 판매, 멤버십 등 커머스부문의 합산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22%를 기록했다. 올 1분기에는 27%로 비중이 확대됐다.
◇카카오, 관계형 커머스로 틈새시장 공략…성장잠재력은
카카오는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카카오는 당초 자회사 카카오커머스를 통해 사업을 영위하다 2021년 9월 카카오로 흡수합병하고 커머스 사내독립기업(CIC)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의 커머스CIC가 운영하는 서비스는 선물하기, 톡스토어, 메이커스 등이 있다. 카카오스타일의 지그재그, 그립까지 포함해 카카오의 합산 거래액은 2022년 기준 9조1000억원 정도다. 네이버의 4분의 1 수준으로 전체 이커머스 시장에서 점유율은 약 4% 정도다.
네이버와 대비되는 지점은 카카오가 ‘선물하기’로 대변되는 관계형 커머스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2010년 12월 출시된 이 서비스는 현재 4800만명의 카카오톡 이용자를 잠재 고객으로 삼는다. 네이버처럼 적립금이 많지 않아도, 할인폭이 크지 않아도 선물로 사는 것이기에 브랜드에 중점을 두고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한다는 특징이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과 선물하기를 바탕으로 커머스사업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다. 2016년에는 크라우드 펀딩, 사전주문 생산 방식을 적용한 카카오메이커스를 출시하고 2019년 6월에는 공동구매 서비스인 톡딜 서비스를 내놨다. 또 2021년 3월에는 카카오톡 하단에 쇼핑백 모양의 탭을 신설했다.
그러나 카카오톡에 얽매여서는 이커머스 사업자로 영향력을 넓히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카카오가 국내 1호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인 그립과 국내 1위 여성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인 지그재그를 각각 2021년 인수한 이유다. 현재 지그재그는 카카오가 지분을 51.12% 보유한 카카오스타일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비록 네이버에 비하면 거래액 등 규모는 한참 뒤처지지만 카카오가 커머스사업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92%에 이르는 메신저시장 점유율을 앞세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만큼 카카오의 잠재적 경쟁력이 무궁무진해서다.
핵심 경영진의 경력에서도 커머스사업에 대한 의지가 느껴진다. 현재 카카오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홍은택 대표는 2016년 카카오메이커스 대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카카오커머스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또다른 카카오 사내이사인 배재현 카카오 공동체 투자 총괄 대표도 과거 카카오커머스 기타비상무이사, 현재 카카오스타일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으며 커머스사업 육성에 힘을 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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