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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기업 공급망 분석

DB하이텍-SK실트론, 전력반도체로 협력포인트 확대

⑦동부그룹 모태 인연, 실리콘 웨이퍼 넘어 SiC·GaN로 파트너십 저변 넓어져

원충희 기자  2023-04-10 15:55:19

편집자주

코로나가 휩쓴 지난 3년간 전 세계 기업들의 주요 이슈는 공급망 안정화였다. 인적·물적 교류가 제한되면서 주요 원재료 및 부품 수급이 어려워졌고 그 와중에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진행 중이다. 엔데믹 이후 폭증한 수요가 금리인상과 러우 전쟁 등으로 다시 가라앉는 등 불확실성도 확대되면서 각 기업들은 주요 매입처 관리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됐다. 국내 주요 전자·IT기업의 공급망 점검을 통해 이들의 사업전략과 시장 변화를 들여다봤다.
DB하이텍의 원재료 매입액 절반 이상은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다. 파운드리 사업에 필수인 웨이퍼는 주로 SK실트론에서 수급한다. 수년째 매입처 변동이 없는데 이 회사의 모태가 옛 동부그룹과 미국 몬산토의 합작법인이라는 인연이 있다.

두 회사의 파트너십은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DB하이텍이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에 나서면서 탄화규소(SiC) 등 반도체 신소재를 SK실트론에서 조달할 예정이다. SK실트론은 질화갈륨(GaN) 웨이퍼 시장에도 본격 진출함에 따라 양사의 협력포인트가 더 많아졌다.

◇파운드리 사업 특성상 원재료 매입액 절반이상이 '웨이퍼'

DB하이텍의 지난해 원재료 매입액은 2131억원으로 전년(1671억원)대비 27.5% 증가했다.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난 이슈로 생산을 늘리면서 재료 구매규모도 증가했다.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4.6%에서 28.7%로 상승했다.

원재료는 주로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웨이퍼, 가스, 화학소재, 레티클(망선) 등인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웨이퍼다. 지난 5년간 원재료 매입액의 50% 이상이다. DB하이텍의 주력은 반도체 제조를 의뢰 받아 만들어주는 파운드리 사업이다.

특히 직경 200mm(8인치) 웨이퍼 기반의 반도체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8인치 웨이퍼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전력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구동칩,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주로 쓰인다.
*2022년도

웨이퍼는 주로 SK실트론과 일본 신에츠 등에서 구매하고 있다. 주요 매입처는 SK실트론이다. 수년째 변동이 없다. 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웨이퍼를 제조할 수 있는 곳이 5개사(신에츠, 섬코, 실트로닉, 글로벌웨이퍼스, SK실트론) 정도인데 DB하이텍은 국산업체를 애용하고 있다. 웨이퍼 공급망의 안정성 측면을 고려했으며 두 회사의 오랜 인연도 작용했다.

DB그룹(당시 동부그룹) 반도체 사업의 시작은 1983년 미국 몬산토와 5대 5로 합작한 '코실'이 시초다. 이 회사는 후에 동부전자통신으로 이름이 바뀌는데 1990년 럭키금성(현 LG그룹)으로 넘어간 뒤 2017년 SK로 주인이 바뀌면서 지금의 SK실트론이 된다. 실트론을 넘긴 DB그룹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로 방향을 틀었고 2002년 인수한 아남반도체를 시작으로 DB하이텍을 탄생시켰다. DB하이텍과 SK실트론 둘 다 모태는 동부그룹에서 시작한 셈이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진출, 신소재 웨이퍼 공급확대 전망

두 회사의 협력 접점은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DB하이텍이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서 신소재 웨이퍼 수급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업계의 주류인 12인치(300mm) 웨이퍼는 면적이 8인치 대비 2.5배 넓기 때문에 웨이퍼 1장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반도체 양도 2.5배 더 많다.

2007년 12인치 웨이퍼 등장 이후 2010년 전후로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8인치 공정에서 12인치 공정으로 대거 옮겨간 이유다.

그러나 DB하이텍은 대규모 투자가 수반돼야 하는 12인치 라인 구축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DB하이텍은 한때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를 악화시킨 블랙홀로 찍혀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매각이 시도됐지만 2015년부터 살아나면서 자리잡게 됐다. 제조업 계열사가 거의 매각됨에 따라 금융 계열사 위주로 재편된 DB그룹으로선 막대한 12인치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SK실트론 홈페이지 발췌

이에 8인치 생산라인으로 신사업으로 할 수 있는 신소재 전력반도체를 대안으로 찜했다. DB하이텍은 충북 상우 팹(반도체 공장)의 절반만 사용하고 '사우스 팹'이라 부르는 나머지 공간에 SiC 및 GaN 반도체 라인 증설 계획을 세웠다. 관건은 SiC 웨이퍼 확보인데 주요 업체인 울프스피드, 투식스 등은 글로벌 기업과 장기계약을 맺은 상태다.

DB하이텍은 SK실트론의 미국법인(SK실트론CSS)과 소이텍 등을 통해 웨이퍼를 수급하기로 했다. SK실트론은 2020년 미국 듀폰사의 SiC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해 만든 CSS를 통해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SiC 웨이퍼는 기존 실리콘 웨이퍼 대비 고압, 고온에 강해 전기자동차,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에 사용되는 차세대 반도체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SK실트론은 GaN 웨이퍼에도 본격 진출에 나섰다. 실리콘 웨이퍼와 SiC 웨이퍼 위에 질화갈륨 박막을 증착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GaN 웨이퍼는 급속충전 등 고출력과 내열성을 요하는 전기차와 스마트기기, 5G 기반 고속 네트워크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수요가 날로 증가하는 중이다. DB하이텍과의 협업 접점이 실리콘 웨이퍼에서 신소재 웨이퍼로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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