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회사채 이슈어인 LG화학이 약 2년만에 국내 기관 투자자를 상대로 프라이싱에 나선다. 같은 AA+ 신용등급인 포스코가 2주 전 기록한 4조원에 필적하는 수요를 모으며 강세 발행에 성공할지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선 연이은 조단위 입찰로 인해 누적된 투자자의 피로감을 거론하며 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주 사이 크게 좁혀진 크레딧 스프레드와 3.5%까지 오른 기준금리 역시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증액한도 8000억까지 열어둬LG화학은 오는 17일 56회차 회사채의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모집액 4000억원을 2년물 750억원, 3년물 2000억원, 5년물 1250억원으로 나눠 매입 주문을 받을 예정이다. 증액 한도는 최대 8000억원까지 열어뒀다.
가산금리 밴드는 2·3·5년물 모두 개별 민평의 '-30~+30bp'를 제시했다. 지난 13일 기준 개별 민평금리는 2년물 4.35%, 3년물 4.379%, 5년물 4.50%다. 입찰 결과에 따라 3% 후반의 양호한 금리를 확정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이번 2·3·5년물은 LG화학이 2021년 2월 이후 약 2년만에 다시 발행하는 공모채다. 작년에는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2조7000억원의 대규모 유동성을 확보한 점을 감안해 공모채 시장을 찾지 않았다.
업계에선 LG화학이 국내 크레딧 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거론하며 2년만의 수요예측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8000억원 증액 발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채권 시장에 유례없는 유동성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완판 여부보다는 얼마나 많은 수요를 모으는지가 관전 포인트라는 전망도 나온다.
KT를 필두로 올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선 우량 발행사는 대부분 1조원이 넘는 매입 주문을 받았다. KT가 2조8750억원, LG유플러스가 3조2600억원, 현대제철이 1조7850억원, 롯데제과가 1조6550억원, GS에너지가 1조5600억원, 이마트가 1조1750억원, SK지오센트릭이 1조1200억원, 연합자산관리가 1조200억원을 각각 모았다.
대규모 퇴직연금 유입으로 기관 투자자의 유동성이 어느 때보다 풍부해진 것이 역대급 유동성 장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을 위시한 주요 큰손들은 시장 회복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우량채가 등장할 때마다 공격적으로 매입 주문을 넣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단위 수요 모집은 확실해 보이며 증액 한도인 8000억원까지 마이너스 가산금리를 확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전망"이라며 "관건은 금리인데 지난주 기준금리가 3.25%에서 3.5%로 오른 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3조 이상 수요 모집은 가능LG화학과 같은 AA+ 신용등급인 포스코는 지난 5일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전무후무한 3조9700억원의 매입 주문을 받았다. 특히 3년물은 단일 회차와 트랜치 기준 국내 공모채 역사상 최대인 2조1150억원의 수요를 모았다.
이에 포스코와 동일한 2·3·5년물로 입찰에 나서는 LG화학 역시 4조원에 육박하는 수요를 모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포스코 발행을 주관한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이 이번 딜을 총괄하는 점도 주목할 만한 관전 포인트다.
다만 시장은 거듭되는 조단위 입찰로 인해 누적된 피로감을 거론하며 LG화학이 포스코 수준의 빅 머니를 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시장이 열린지 불과 2주만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이 회사채 매입에 소요된 점 역시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2주 사이 '국고채-회사채 금리 스프레드'가 빠르게 좁혀진 점 역시 포스코 수준의 수요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변수로 거론된다. 이달 초 135bp 수준이던 3년물 국고채와 AA+ 등급 회사채의 금리 격차는 최근 112bp까지 좁혀졌다. 국고채와 개별 민평금리 스프레드도 130bp였던 포스코와 달리 LG화학은 105bp에 불과하다.
IB업계 관계자는 "2주 전 포스코를 필두로 다수의 우량채가 쏟아져 나왔을 때와 지금의 시장 열기가 같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며 "그래도 LG화학이라는 명성과 위상이 있는 만큼 LG유플러스와 비슷한 3조원 이상은 충분히 모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LG화학 개별 민평금리가 4.3%인데 여기서 30~40bp를 더 차감하면 3% 후반까지 떨어지고 이는 기준금리인 3.5%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가격"이라며 "아무리 회사채 시장이 살아나고 있고 LG화학이 우량채라고는 하지만 기준금리와 유사한 가격으로 크레딧물에 베팅할 투자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