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회사채 시장에 유동성이 급격하게 유입되자 SK그룹을 대표하는 발행사인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이 조달전략을 재빠르게 세웠다. 5개월 이상 남은 채권 만기 차환 자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기로 한 것.
SK지오센트릭의 회사채 수요예측은 약 9개월만이다. 시장은 유례없는 수급을 거론하며 SK지오센트릭이 만족스러운 금리로 3000억원 증액 발행에 성공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개별 민평금리가 AA- 등급보다 20bp가량 높게 형성되고 있는 점은 기관의 투자 심리를 한층 자극할 수 있는 메리트다.
◇일찌감치 차환 재원 마련
SK지오센트릭은 오는 11일 올해 첫 회사채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모집액 2000억원을 2년물 700억원, 3년물 1000억원, 5년물 300억원으로 나눠 매입 주문을 받을 예정이다. 증액 한도는 최대 3000억원까지 열어뒀다. 가산금리 밴드는 2·3·5년물 모두 개별 민평의 '-30~+50bp'를 제시했다.
수요예측 업무는 대표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과 SK증권이 총괄한다. 두 주관사 외에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하이투자증권이 인수단으로 참여한다. 신한투자증권은 2013년 11월 이후 약 10년만에 SK지오센트릭 대표 주관을 맡았다.
이번 2·3·5년물은 SK지오센트릭이 2022년 4월 이후 약 9개월만에 다시 발행하는 공모채다. 작년 4월에는 3·5년물로 2000억원을 마련해 차입금 상환, 설비 투자, 타법인 출자 등에 활용했다. 다만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업황이 심각하게 침체된 작년 하반기 이후로는 공모채 시장을 찾지 않았다.
9개월만에 공모채로 조달하는 자금은 전액 만기채 차환에 투입한다. 오는 6월 29일 만기 도래하는 16회차 3년물 2300억원을 차환할 예정이다. 회사채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긴 하나 변동성 리스크 역시 상존하는 점을 감안해 일찌감치 차환 재원을 확보해두기로 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는 이번 2·3·5년물의 신용등급과 전망을 'AA-,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룹 계열사를 기반으로 한 공고한 밸류 체인과 주력 제품의 양호한 시장 점유율을 감안해 이번 본 평가에서도 AA등급을 매겼다.
다만 2021년 하반기부터 부진에 시달리는 실적은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삼양패키징, 퓨어사이클, 원폴 등 지난해 친환경 사업 계열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현금 유출이 발생한 점도 모니터링이 필요한 잠재 부실이라고 평가했다.
◇초강세 발행 유력
최근 국내 회사채 시장은 유례없는 유동성 잔치가 벌어지고 있다. 2조8850억원의 매입 주문을 받은 KT를 필두로 이마트, 포스코, LG유플러스, 롯데제과, 연합자산관리 등이 수요예측에서 각각 1조원이 넘는 매입 주문을 받았다. 지난 5일 프라이싱에 나선 포스코는 3조9700억원이라는 전무후무한 수요를 모으기도 했다.
연초를 맞아 기관 투자자의 유동성이 어느 때보다 풍부해진 것이 유례없는 수요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작년 시장 침체로 비자발적으로 쌓아둔 현금에 연초 퇴직연금까지 대거 유입되면서 채권에 투자할 수 있는 실탄이 두둑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작년 레고랜드와 흥국생명 사태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고채-회사채 스프레드'가 리먼 사태 이후 최대인 180bp까지 벌어졌다"며 "그랬던 스프레드가 연초부터 이어지는 오버부킹 랠리 덕분에 최근 130bp까지 빠르게 좁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스프레드가 빠르게 축소된다는 것은 기관 투자자가 크레딧 시장 안정화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며 "아직 회사채를 담지 못한 기관은 설 명절 전이 염가 매수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더 치열하게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이 같은 분위기를 거론하며 SK지오센트릭이 어렵지 않게 모집액 2000억원 완판에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3000억원 증액을 해도 가산금리를 밴드 하단보다 낮게 확정하는 초강세 발행이 유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개별 민평금리가 AA- 등급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는 점은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지난 6일 기준 SK지오센트릭 회사채의 개별 민평금리는 2년물 5.04%, 3년물 5.21%, 5년물 5.42%다. 3개 트랜치 모두 등급 대비 20bp가량 높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역대급 연초 효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오는 SK 계열 우량채이기 때문에 적잖은 수요가 몰릴 것으로 예상한다"며 "다만 최근 몇년 사이 SK그룹 계열사가 사명과 CI를 자주 바꾼 탓에 유니버스를 가진 투자자 사이에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는 점은 리스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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