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는 투자시장에서 '정중동' 행보를 보였다. 글랜우드PE는 신규 투자가 아닌 포트폴리오 엑시트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주요 포트폴리오인 한국유리공업의 회수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 2호 블라인드펀드로 실탄을 쌓아둔 만큼 내년엔 적극적인 투자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어려운 시장 속 신규 투자 대신 ‘전략적 관망’글랜우드PE는 국내 톱티어 하우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2014년 출범 후 불과 8년 만에 거둔 성과다. 이렇게 빠른 성장에는 이제껏 투자 실패 전례가 없는 높은 투자 성공률이 있었다. 그동안 글랜우드PE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는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다. 더불어 매 투자에서 높은 수익을 거둬왔다.
글랜우드PE는 올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급변하는 외부 환경이 주 원인으로 거론된다. 투자시장은 올해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투자를 단행했던 상당수 PE가 거액의 투자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금리가 오르자 유한책임사원(LP)이 하나둘 곳간을 닫기 시작했다. 투심 또한 급격히 얼어붙었다. 그나마 블라인드펀드를 들고 있는 하우스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자금 조달이 용이한 만큼 더 좋은 조건의 투자 제안을 받아보기 좋았다.
앞서 조성한 펀드로 실탄은 충분했지만 글랜우드PE는 더욱 신중했다. 여러 투자 건을 검토했지만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껏 높아진 기업 밸류에이션과 불안정한 외부 환경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글랜우드PE는 신규 투자 대신 기존 포트폴리오 매각에 집중했다. 시장에 내놓은 매물은 한국유리공업이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두 포트폴리오 모두 시장이 침체되기 전에 엑시트 작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매각을 조율하던 한국유리공업은 LX인터내셔널의 품에 안겼다. 이달 공정위는 이번 인수합병(M&A)에 조건부 승인을 냈다. 큰 변수가 없다면 곧 딜 클로징에 다다를 예정이다. 양측은 지난 3월 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매각 대상은 한국유리공업 지분 100%다. 인수가는 5925억원이다. 투자 원금 대비 수익률(MOIC)은 1.9배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1분기 SPA를 마쳤지만 이후 인수 작업은 상당시간이 걸렸다. 본계약 후 기업결합신고 등 행정 절차로 8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랜우드PE로서는 상당 수준의 내부수익률(IRR)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맹서 악연으로' PI첨단소재 매각 무산글랜우드PE가 웃을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달 초 PI첨단소재 매각 작업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인수자로 낙점됐던 베어링PEA가 돌연 발을 뺀 것이 원인이다. 이달 30일 딜 클로징을 앞둔 시점에서 갑작스러운 의사결정이었다. 특히 그 상대가 글랜우드PE의 오랜 동반자 관계였던 베어링PEA라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PI첨단소재는 올해 초부터 글랜우드PE가 매각을 추진해왔다. 쟁쟁한 인수 후보자들이 몰렸고, 조 단위 빅딜이 성사됐다. 승자는 베어링PEA였다. 글랜우드PE와 베어링PEA는 수년간 시멘트 업계 인수전에 잇따라 동참했던 PE업계의 '시멘트 동맹'이었다.
글랜우드PE는 2015년 동양시멘트 인수전에서 협업한 이후 연을 이어갔다. 당시 딜을 따내진 못했지만, 이듬해인 2016년 한라시멘트가 M&A 매물로 나오자 다시 손 잡았다. 글랜우드PE와 베어링PEA는 결국 한라시멘트 인수에 성공했다.
한라시멘트 엑시트로 양자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다. 베어링PEA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입지를 굳혔고, 글랜우드PE 역시 정상급 하우스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17년에도 현대시멘트 인수전에서 의기투합하는 등 양사의 파트너십은 공고했다.
이들의 신뢰는 PI첨단소재 딜에서도 통했다. 베어링PEA는 롯데케미칼, KCC글라스, 알케마와 같은 SI를 따돌렸다. 후보자들이 제안한 인수가는 엇비슷했다는 전언이다. 차이는 비가격 조건에 있었다. 베어링PEA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글랜우드PE를 잘 알고 있었다. 임직원 고용 안정, 한라시멘트 턴어라운드 경험 등을 앞세웠고 매도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러나 베어링PEA의 PI첨단소재 인수는 결론적으로 악수가 되고 말았다. 베어링PEA는 PI첨단소재 지분 54%를 1조2750억원에 매입할 예정이었다. 중국 당국의 기업결합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곧 승인이 날 것이란 관측이 이어졌다. 이번 승인이 나오면 딜 클로징에 근접하는 상황이었다.
시장에서는 베어링PEA의 완주 가능성에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시장 상황이 급속히 나빠졌기 때문이다. SPA체결 직후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 들었다. 딜 클로징 전부터 베어링PEA는 적잖은 손실을 안고가는 형국에 빠졌다. 딜 클로징 시점도 9월 30일에서 이달 30일로 3개월 연기했다.
글랜우드PE는 법정 다툼을 예고한 상태다. 조만간 베어링PEA를 상대로 위약벌 500억원과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전망이다. 이번 딜로 양측은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베어링PEA는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한순간에 오랜 우군을 잃게 됐다. 이번 결정을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세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리브영 엑시트 향방 관심, 2호펀드 첫 투자에 쏠린 눈올해 신중했던 글랜우드PE였던 만큼 내년 투자 행보가 투자 관계자들의 이목을 끈다. 지난해 7월 결성한 9000억원 규모 블라인드펀드가 건재하다. 투자처가 어디가 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다. 2호 펀드 크기를 감안하면 3000억원 이상 대형 매물에 관심을 둘 가능성이 점쳐진다.
올해 IPO를 추진하다 연기한 올리브영의 향방도 관심사다. 지난 8월 올리브영은 상장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투심 냉각으로 주식시장이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당시 '대어'로 꼽히던 원스토어, SK쉴더스, 현대오일뱅크 등이 연이어 상장을 중단했다. 무리한 IPO 대신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계산이 깔렸다.
글랜우드PE가 올리브영 프리IPO 투자에 참여한건 2020년이다. 약 4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했다. 이를 통해 올리브영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올리브영 기업가치는 1조8000억원 수준이었다. 글랜우드PE 투자 이후 올리브영 실적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올해 역시 실적 호조세를 이어가면서 기업가치는 3조원에 육박한다는 관측 역시 제기된다.
글랜우드PE는 올리브영의 엑시트를 조급해하지 않는 분위기다. 엑시트 시점이 뒤로 미뤄지긴 했지만 여전히 투자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올리브영 상장 재추진 시점은 내년 말 이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만약 내년 투자금 회수가 가시화될 경우 글랜우드PE엔 또 하나의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